[理知논술/통합논술 답안 작성 α와 Ω]①논술 첫단추 논제 분석

  • 입력 2008년 3월 10일 02시 59분


답안지만 마주하면 잊어버리는…

논술 첫단추는 논제 분석!

흔히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많이 읽고, 많이 쓰면 좋은 논술문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닙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창의적인 사고가 요구되며, 꾸준한 독서와 많은 글쓰기 훈련은 이런 능력을 크게 향상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좋은 논술문을 쓰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 부족합니다. 논술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밝히는 일반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고교 내신 및 수능 시험에 대한 보정적(補整的) 기능을 담당하는 대학 입학시험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논술 문제에는 출제자의 출제 의도가 있고, 수험생이 논의해야 할 논점과 주제가 있으며, 객관적인 채점 기준이 있기 마련이지요. 따라서 출제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문제의 요구 사항을 충실히 지키는 것은 좋은 논술문의 필수 요건입니다.

논술의 첫 단계는 바로 논제 분석과 이해 작업입니다. 즉 논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바탕으로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죠. 하지만 많은 학생이 논제 분석과 이해에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수험생들의 답안 중 논제를 벗어난 것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논제를 벗어난 답안은 채점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거나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게 되겠죠.

다음의 2008년 고려대 모의평가 문제에 대한 채점 교수의 평을 보면 많은 학생이 논제 분석에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래서 논제를 벗어난 글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채점 평을 간략히 인용해 볼까요?

이 답안을 쓴 학생은 논제와 상관없는 논의를 장황하게 하는 반면 표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 의미를 생각해서 논제에 답하려는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경제성장과 에너지 소비 변화의 특징’에 대해서 이 학생은 논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논의로 원고지를 채우고 있다. 즉, 성장 위주의 경제발전에 대한 비판과 환경오염 및 중소기업의 어려움 등에 대한 지적은 중요한 것들이지만 문제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표를 활용해서 경제성장과 에너지 소비 변화의 특징을 설명해야 한다.

―2008학년도 고려대학교 논술백서 中

그러면 왜 이렇게 논제를 벗어난 글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출제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쓰라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2008학년도 성균관대 모의평가 출제위원 채점 평을 봅시다.

‘…에 대해 설명하라’는 것인지, ‘…에 대해 논증하라’는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이 되어야 한다. “…공통점 혹은 …차이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라고 했으므로, 차이점 혹은 공통점을 제시하고 그 근거를 밝히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다수 학생의 답안에는 “…상대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식의, 문제가 요구하지 않은, 당위적 주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출제 의도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데서 생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08학년도 성균관대학교 모의논술 채점 평 中

둘째, 논제에서 요구 사항이 몇 가지이며, 무엇이 중요한지를 분석하지 않고 논술문을 작성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논제 경향을 살펴보면, 하나의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논제는 드뭅니다. 예컨대 ‘<가>의 그림과 설명이 의미하는 바를 요약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에 제시된 데카르트의 논지를 구체적으로 비판한 후, <가>와 <다>를 참고하여 미래 사회에서 새롭게 설정될 인간의 정체성 및 인간과 기계의 상호 관계에 대하여 논술하시오.’(2006학년도 한양대 정시 논술)와 같이 하나의 논제에 여러 개의 요구 사항을 함께 논의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문제에서는

① <가>의 그림과 설명이 의미하는 바를 요약,

② <나>에 제시된 데카르트의 논지를 구체적으로 비판,

③ 미래 사회에서 새롭게 설정될 인간의 정체성 및 인간과 기계의 상호 관계에 대하여 논술하는 세 가지의 요구 사항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①은 자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②는 데카르트의 고전적 인간관에 대한 비판을, 그리고 ③은 ①과 ②의 논의를 바탕으로 인간과 기계의 관련성과 인간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 견해를 각각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수험생은 이렇게 논제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몇 개이고, 각각 무엇을 중점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지를 깊이 있게 분석하지 않고 논술문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셋째, 기존의 논술 학습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학생이 학교나 학원에서 논술을 배웠고, 이를 통해 논술고사에 출제되는 주요 주제에 대해 많은 배경 지식을 습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각 대학의 논술 문제는 학원이나 학교에서 배운 논술 문제와 같은 수준으로 출제되지 않습니다. 물음을 세분하거나 여러 가지 조건을 추가하여 새롭게 접근하도록 문제를 출제합니다. 그런데 많은 학생은 논술문제의 전체 주제만 보고 논제를 깊게 분석하지 않은 채 답안을 작성합니다. 논제 분석이 타당하고 깊이 있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죠.

흔히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은 논술 문제를 앞에 두고 펜을 잡은 수험생이 문제 해결에 앞서 반드시 상기해야 할 사항입니다. 논술의 첫 단추인 셈이지요. 논제 분석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논제 분석의 방법도 알아야겠지요? 다음 연재에서 자세하게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진열 ㈜엘림에듀 집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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