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김만중,‘구운몽(九雲夢)’

  • 입력 2008년 3월 3일 03시 03분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겨우내 매서운 바람에 시달리기도 했고 차가운 눈에 싸여 온몸이 으슬으슬하기도 했지만 결국 나뭇가지도 봄을 맞이하게 되었네요. 이제 곧 우리에게도 봄이 찾아올 겁니다. 메마른 가지를 뚫고 올라오는 꽃잎을 보며 올 한 해를 위한 조그마한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혹시 올해를 ‘고전 탐독의 해’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매력적이지 않나요?

이번 고전 여행에서 살펴볼 작품은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입니다.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작품이지요. 하지만 구운몽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 본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겁니다. 특히 청소년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고요. 구운몽은 어른들에게도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 멀리 던져 버리면 큰일입니다. 구운몽은 의외로 여러분이 좋아할 요소가 많은 작품이거든요. 한 장 한 장 천천히 읽어나가다 보면 재미와 더불어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겁니다.

구운몽은 꿈을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이런 것을 ‘몽자류(夢字類)’ 소설이라고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꿈의 세계로,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구조의 작품을 일컫는 말이지요. 구운몽은 국내 몽자류 소설의 효시입니다. 자, 이제 구운몽의 주인공들을 한 번 만나볼까요?

소설 구운몽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은 ‘성진’이라는 남성입니다. 그는 열두 살부터 불도를 닦아온 승려이지요.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은 바로 ‘여덟 명의 선녀’입니다.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알아챘을 텐데요, 제목의 첫 글자인 ‘구(九)’는 성진과 여덟 명의 선녀를 가리키고 있지요. 이 아홉 명의 사람이 어떠한 인연으로 맺어지는지 살짝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진은 육관대사의 수제자입니다. 성진에게는 도(道)를 깨닫고 육관대사처럼 많은 제자를 이끌며 설법할 수 있는 자질이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육관대사에게 혼쭐이 납니다. 대사의 심부름을 다녀오면서 구도자로서 지켜야 할 두 가지를 어겼기 때문이지요. 첫째는 정신을 흐리게 하는 술을 마셨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여쁜 여덟 선녀와 희롱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큰 문제는 성진이 자꾸만 여덟 선녀와 희롱하던 순간을 그리워하며 속세의 생활을 떠올렸다는 것입니다. 육관대사는 그런 성진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심하게 꾸짖으며 윤회의 형벌을 내려서 지옥으로 내칩니다. 성진과 말을 섞었던 여덟 선녀도 함께 말이지요. ‘여기까지가 ‘현실’의 시간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꿈’의 세계가 열리게 되는데요. 속세 사람으로 환생해서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환상적인 삶이 시작됩니다. 성진은 양소유라는 인물로, 여덟 선녀는 각각 정경패, 이소화, 진채봉, 가춘운, 계섬월, 적경홍, 심요연, 백능파라는 이름의 인물로 세상에 태어났지요. 이름들이 참 어렵지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자꾸만 앞 장으로 다시 가보게 될 겁니다. 누가 누군지 자꾸만 헷갈리거든요. 그럴 때를 대비해서 책 옆에 작은 종이 한 장을 준비해 두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양소유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이고 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차례대로 적어두면 내용이 한결 잘 이해될 겁니다.

양소유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전술과 전략에 뛰어나고 기예도 출중해 많은 사람에게서 환대를 받는 인물이었지요. 그는 승상이라는 높은 벼슬에 오르고 우여곡절 끝에 여덟 선녀를 모두 만나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양소유를 부러워했습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도 환호성을 지르며 양소유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환호성이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지속되지는 못할 겁니다. 왜냐고요? 그건 여러분이 직접 확인해 보세요.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환상적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성진이 겪는 양소유의 삶도 결코 환상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성진이 음속으로 크게 깨달음을 얻었던 것은 현실보다 더욱 현실감이 넘치는 꿈 때문이었으니까요. 여러분도 혹시 현실처럼 느껴진 꿈 때문에 무언가를 결심해 본 적은 없나요?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성진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성진이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해답을 찾기 위한 고전여행, 여러분의 몫만 남았습니다.

이승은 타임에듀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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