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대화록-방북 보고서는 국가비밀’…검찰, 수사 착수

  • 입력 2008년 1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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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21일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유출한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의 대화록과 방북 배경 경위 보고서가 국가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오세인)가 이 사건을 맡았다.

검찰은 김 원장의 소환 여부에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수사가 김 원장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규명하는 출발선이라는 시각이 많다.

▽“방북 배경도 수사 대상”=검찰이 김 원장에 대한 수사 착수 사실을 공개한 것은 우선 김 원장이 유출한 문건이 ‘비밀’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

형법의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혹은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신종대 2차장은 이날 “(김 원장이 유출한) 문건 내용이 ‘일응(一應)’ 형법 127조에 규정된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돼 ‘내사’에 착수한다”라고 말했다.

신 차장이 ‘일단 그렇게 보인다’는 뜻의 일본식 법률 용어인 ‘일응’이라는 단어와 ‘수사’라는 표현 대신 ‘내사(內査)’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김 원장의 형사처벌 여부가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문건의 비밀 여부에 대해 각계의 자문을 구하고 있다”며 김 원장의 사표 수리를 유보하고 있는데 검찰이 너무 앞서가는 의견을 내놓기 부담스러워서라는 분석도 있다.

법무부와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은 내부 논의 과정에서 정보기관장의 북한 내 동선이 공개되거나 상세한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 향후 남북 협상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 등을 주로 고려했다고 한다.

일단 수사가 시작되면 김 원장의 방북 목적이나 실제 대화 내용에 대해서도 조사가 깊이 있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김 원장의 방북 당시 국정원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제기됐지만 김 원장이 방북을 강행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

그러나 신 차장은 ‘김 원장의 방북 목적도 수사 대상이냐’는 질문에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여부를 규명하는 게 초점”이라고만 답변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기밀성과 위법성 여부는 검찰이 나름대로 판단해 나가겠지만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하는 인사권자(대통령)의 판단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종합적인 판단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의혹 사건 규명으로 이어지나=검찰 수사의 범위가 문건 유출 사건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우선 검찰은 김 원장의 최측근 인사와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가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 김경준(42·구속 기소) 씨의 국내 송환 과정에서 김 씨 측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는지를 확인 중이다.

그러나 김 원장의 최측근 인사는 내부에서 “김 씨 측을 접촉한 적이 없다. 검찰 수사로 차라리 의혹을 벗었으면 좋겠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법무부가 이미 김 씨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방교도소 접견기록을 한국 측에 제출하기로 한 만큼 접견기록 내용도 향후 수사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또 국정원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주변을 뒷조사했다는 의혹도 수사 중이다. 국정원은 “통상적인 업무”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으나 새 정권 출범에 맞춰 전면적인 재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김승규 전 국정원장이 21일자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김만복 원장 취임 이후 일심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한 부분도 향후 파문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검찰의 한 관계자는 “간첩사건은 수사할 때 못하면 나중에 밝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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