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4세대의 그늘]성장동력 떨어지면서 꿈도 희망도 잃어가

  • 입력 2007년 7월 21일 03시 02분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가 ‘하류의식’에 젖어들면서 한국 사회도 ‘하류사회’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판이 점점 힘을 잃으면서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지만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울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뒤 3년째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심재환(가명·29) 씨는 올해 건강을 핑계로 1차 시험을 보지 않았다.

경제학을 전공한 심 씨는 2003년 대학원 입시에서 떨어진 뒤 20여 곳에 입사원서를 냈다. 평균 학점 3.3점, 토익 점수 860점 등 이른바 ‘스펙’이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인턴 경험이나 공모전 참가 등 남들과 차별화할 만한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것이 문제였는지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영어 공부에 매진해 이듬해 다시 원서를 내밀었지만 졸업생인 심 씨에게 면접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중견기업 부장인 아버지와 중학교 교사인 어머니 아래서 부족함 없이 자란 그에게 취업 실패는 첫 좌절이었다.

2004년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한 그는 지난해까지 1차 시험에 연거푸 떨어지면서 자신감을 점점 잃었다.

심 씨는 “애초부터 법조인으로 성공하겠다거나 신분 상승을 이루겠다는 희망 없이 사법시험에 뛰어든 것이 문제였다”며 “이렇게 부모님께 의존해 살다보면 생활수준이 점점 떨어질 게 뻔해 하루하루 불안하다”고 말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 세대는 사회적 성공이나 계층 상승에 대한 의욕이 기성세대보다 높은 것이 정상이다. 이들의 의욕은 기업과 사회의 성장 동력이 된다.

하지만 2007년 한국 사회의 젊은 세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성공에 대한 의욕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 25∼34세의 66%, “나는 중하층 이하다”

본보는 13∼18일 채용정보업체 커리어와 함께 1973∼1982년에 태어난 직장인 833명을 대상으로 계층의식과 사회적 성공 의욕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현재 25∼34세인 이들은 어린 시절 고도성장의 과실을 맛본 첫 세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기업과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경험했다.

이들에게 소득과 직업, 교육, 재산 정도를 고려해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 ‘중상’, ‘중중’, ‘중하’, ‘하’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 물어본 결과 절반이 훨씬 넘는 65.6%가 중하층이나 하층에 속한다고 답했다. 중상층이나 상층에 속한다는 응답은 5.2%에 그쳤다.

현재 종사하는 직종별(관리사무직·기술기능직·영업직·전문직)로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

기술기능직에 종사하는 175명 가운데는 무려 80.0%가 중하층 이하라고 답했다. 하지만 전문직에 종사하는 180명 가운데는 절반이 넘는 59.4%가 중하층 이하라고 응답했다.

과거(5∼10년 전)보다 현재의 생활수준을 오히려 낮게 평가하는 젊은 세대도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생활수준을 100점 만점에 몇 점이나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86.9%가 80점 미만이라고 답했다. 현재 생활수준을 80점 미만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이보다 늘어난 88.3%였다. 오히려 생활수준이 과거보다 나빠졌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과거보다 현재의 생활수준이 더 떨어졌다고 인식하는 비율의 차가 영업직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이는 다른 직종에 비해 영업직이 경기에 민감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 불안을 느끼는 비정규직(206명)인 경우 현재 생활수준이 80점 미만이라는 응답이 92.6%에 이르렀다.

○ 25∼34세 세대의 69%, “나의 목표는 과장이나 부장”

미래에 대한 불안은 희망마저 앗아가고 있다.

연령이 25∼34세인 세대 가운데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꿈꾸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833명 가운데 19.7%인 164명만이 이런 포부를 갖고 있었다.

반면 40.2%는 자신이 과·차장 직급까지 승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과·차장은 직장생활 10년 안팎이면 올라갈 수 있는 직급으로 상당수 젊은이가 자신의 직장 수명을 10년 정도로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회사의 중간 간부인 부장급까지 승진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을 포함하면 69.4%가 회사의 중역(상무급 이상)은 애초부터 꿈꾸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역을 꿈꾸는 비율을 직종별로 보면 전문직이 42.3%로 가장 높은 반면 관리사무직(25.4%)은 영업직(35.1%)이나 기술기능직(28.6%)보다도 낮아 관리사무직의 ‘직장 기대 수명’이 가장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자연히 인생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 역시 사회적 성공(22.0%)보다는 인간관계(35.2%)나 여유로운 생활(23.3%)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한편 한국 사회의 소득 격차가 점점 커질 것으로 생각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96.9%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런 불안감은 직업 선택 시 최우선 고려요소도 바꿔놓았다.

자신의 흥미나 적성(19.1%), 직업에 대한 전망(15.5%)에 앞서 연봉과 같은 직장의 대우(37.8%)나 직업의 안정성(22.7%)이 젊은 세대에게는 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의욕 상실’은 자녀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자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절반이 넘는 55.6%가 그저 자기만의 인생을 살기 바란다고 응답했다. 특별히 바라는 것이 없다는 응답이 7.8%로 대기업 입사(7.1%)보다도 높았다.

일본의 사회학자 미우라 아쓰시(三浦展) 컬처스터디스 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출간한 ‘하류사회’라는 책에서 “하류사회란 실제 먹고 사는 것이 어려운 사회이기보다는 중산층이 되려는 의욕을 잃어버린 사회”라며 “젊은 세대가 의욕과 희망을 잃어가면서 의식 자체가 ‘하류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하류사회:

대부분의 사람이 중류가 되고자 하는 목표나 의욕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알맞은 생활에 안주하려는 사회를 말한다. 일본 사회학자 미우라 아쓰시 씨가 지난해 저술한 책 ‘하류사회’에서 언급한 용어. 그는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한 일본 사회를 그동안 지배해 오던 ‘전 국민의 중산층’ 패러다임이 깨지고, 특히 젊은 층의 의식이 급속히 하류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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