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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27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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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문학교과서(천재, 두산, 지학사 외)
[Tip]
일찍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도현상 중 하나로 물신성을 지적한 바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상품이 독자적인 생명을 지닌 듯 교환되는 상품의 물신성과 상품 간의 가치를 표현하는 매개물인 화폐가 상품의 측정 기준으로 여겨지는 화폐의 물신성이 그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관계는 상품의 관계로 대체되고 인간의 가치는 화폐의 형태로 표현된다.
상품과 화폐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산업화의 깃발이 전국에 펄럭이던 1970년대는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 물신의 지배가 극에 달했던 시기이다. 이때를 배경으로 한 위 소설의 주인공은 기계에 불과하다. 자본주
의 사회에서 기계는 상품을 생산하는 수단이다. 주인공의 삶 또한 상품을 생산하는 도구 이외의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물신적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정보는 홍수가 났다고 할 만큼 많이 유통되지만, 정작 쓸 만한 정보는 드물고 필요한 것들을 찾기도 무척 힘들다. 인터넷을 제대로 쓰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책으로 나왔다는 사실은 반어적일 뿐만 아니라 시사적이다.
무엇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정보가 많아질수록 의미는 적어진다’는 말도 나온다. 정보의 물신화(物神化)를 우려한 언명(言明)이다. 정보의 물신화란 정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과 신뢰를 배제한 채 마치 상품처럼 유통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여기서 정보 자체는 도구와 조작의 대상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며, 진실과 신뢰는 더욱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정보의 물신화에 맞서 진실과 신뢰의 가치를 지키는 일, 바로 이것이 신매체 시대의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설정되어야만 한다.
― 국어교과서 하권, ‘다매체 시대의 언어활동’ 중
[Tip]
정보의 사회 지배가 강화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수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정보는 곧 상품이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는 부와 권력의 동의어에 근접하고 있다. 자본이 그랬듯이 이제 정보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장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자본이 그러했듯이 정보가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 사이의 진실과 신뢰는 사라진다. 또 다른 물신의 등장을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전략) “동무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포로 생활에서, 제국주의자들의 간사한 꼬임 수에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용서할 수 있소.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공화국은 동무의 하찮은 잘못을 탓하기보다도, 동무가 조국과 인민에게 바친 충성을 더 높이 평가하오. 일체의 보복 행위는 없을 것을 약속하오. 동무는 ….”
“중립국.”
중공 대표가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장교는 증오에 찬 눈초리로 명준을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중략)
설득자는,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면서,
“중립국이라지만 막연한 얘기요. 제 나라보다 나은 데가 어디 있겠어요. 외국에 가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지만, 밖에 나가 봐야 조국이 소중하다는 걸 안다구 하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울분은 나도 압니다. 대한민국이 과도기적인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는 걸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대한민국엔 자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유가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북한 생활과 포로 생활을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중립국.”
― 최인훈 「광장」 문학교과서(디딤돌, 문원각 외)
[Tip]
산업화와 함께 1970년대를 지배했던 것은 다름 아닌 냉전 이데올로기였다. 진실을 보고 듣지 못하고 말할 수도 없는 곳에 인간됨은 없다. 모든 국민에게 정신적 미숙아를 강요했던 이데올로기는 물신의 또 다른 형태이다.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했는지 명준은 ‘중립국’을 택하는 것으로 일찌감치 물신의 지배에 저항했다. 아래 시의 화자 또한 물신이 파괴한 인간적 가치를 회복하자고 한다.
(전략)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人跡(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문학교과서(교학사, 디딤돌, 형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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