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정치인 비난 글 “구체성 없다면 비방죄 아니다”

  • 입력 2005년 4월 26일 18시 33분


코멘트
선거를 앞두고 정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빨갱이’ ‘친일파’ 등의 용어를 사용해 정치인을 비방했더라도 특정 사건이나 상황을 인식할 정도가 아니라면 ‘구체적인 사실 적시’라고 볼 수 없으므로 선거법의 ‘후보자 비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영란·金英蘭 대법관)는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국회의원 후보자를 비방하는 글을 띄운 혐의(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박모(47)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14일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박씨는 17대 총선 직전인 지난해 3월 한나라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14차례에 걸쳐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인 박근혜(朴槿惠) 의원과 홍사덕(洪思德) 전 의원에 대해 ‘친일파’ ‘빨갱이’ ‘미숙아’ 등의 표현이 담긴 글을 띄웠다. 이 때문에 기소돼 1, 2심에서 모두 벌금 2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선거법의 후보자 비방죄는 피고인이 후보자의 당선을 방해할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해 비방을 해야 하는데 이때 ‘사실의 적시(摘示)’란 가치판단과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과 달리 증거에 의해 입증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빨갱이나 친일파는 증거로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표현에 불과한 만큼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 대법관은 지난해 10월 2002년 대통령선거 직전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장인은 빨치산 출신”이라고 발언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원범(李元範) 전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는 판결을 내렸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