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 울리는 ‘효도방학’

  • 입력 2004년 5월 3일 18시 38분


“효도방학입니까, 불효방학입니까.”

맞벌이를 하고 있는 김모씨(42·대전 서구) 부부는 자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6, 7일 이틀간 ‘효도방학’을 실시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받은 뒤 걱정이 태산 같다.

초등학생 1, 4학년 남매를 맡길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틀 동안 밥도 챙겨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집에 놔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골에 계시는 어머님을 모셔 올 수도 없고….”

김씨 부부는 둘 중 한 명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연가를 낼 생각까지 하고 있다.

제7차 교육과정의 하나로 일선 초등학교들이 가정의 달인 5월에 ‘효행체험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시행하고 있는 효도방학이 적잖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교장 재량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학교측의 의도대로 일방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것.

또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을 따로 돌볼 수 있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다.

대전의 경우 전체 120개 초등학교 중 51개 학교에서 학부모들의 반대로 효도방학이 부결되거나 유보됐다.

나머지 69개 학교는 예정대로 방학을 실시할 예정이어서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은 이틀 동안 ‘나 홀로 집에’ 신세를 면치 못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대전시교육청 등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학부모들을 상대로 가정통신문을 통해 시기, 기간을 조사했다면 이렇게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고 있는 마당에 참으로 난감하다’ 등 불만을 토로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경기 안양시 호계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송모씨(41·여)는 “아이를 혼자 집에 놔두고 일을 나가야 할 처지다. 결국 교사와 교사 자녀들만 ‘사람답게’ 쉬는 방학일 뿐 우리에겐 불효방학”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대전시교육청 초등교육과 관계자는 “7차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현장·체험학습의 일환으로 효도방학을 시행하지만 문제점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집에 홀로 있어야 하는 아이들을 등교하게 해 관리하고 있으나 시간 때우기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