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만 있고 정부는 없었다…조류독감-FTA에 雪魔까지

  • 입력 2004년 3월 7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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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내린 폭설로 충남 홍성군 구항면의 한 양계장 지붕이 내려앉으면서 1만여마리의 닭이 폐사했다. 인부들이 살아남은 닭을 비어있는 인근 양계장으로 옮기기 위해 꺼내고 있다.   -홍성=연합
5일 내린 폭설로 충남 홍성군 구항면의 한 양계장 지붕이 내려앉으면서 1만여마리의 닭이 폐사했다. 인부들이 살아남은 닭을 비어있는 인근 양계장으로 옮기기 위해 꺼내고 있다. -홍성=연합
3월 폭설로 가장 큰 타격을 본 중부지방의 시설재배농가들이 재기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군부대와 공무원들의 지원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또 이틀간 교통이 일부 마비됐던 대전시내도 활발하게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젠 슬퍼할 힘조차 없네요. 그래도 어쩝니까. 배운 게 이것이니 다시 추스르고 일어서야죠.”

가장 큰 피해를 본 충북 청원군과 충남 부여 논산 금산지역의 시설재배농가들은 복구의 손길을 기다리라며 재기를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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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을 눈앞에 둔 표고버섯 재배사가 주저앉았지만 접근이 어려워 아직 복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김태형씨(60·청원군 문의면 미천리)의 속은 새카맣게 타고 있다. 임협에 진 빚 3500만원을 4월 말이면 거의 다 갚을 계획이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7일 오전 무너진 딸기하우스를 세우고 있던 박창희씨(64·청원군 남일면 가산리)도 “24년간 딸기농사를 지어왔지만 3월 폭설은 난생 처음”이라며 “수확 예정이던 딸기와 시설비 등 2000여만원이 하룻밤 사이 사라졌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식처럼 키운 산란계 1만여마리를 잃은 장용훈씨(45·충남 홍성군 구항면 태봉리)는 “양계업을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7일 대전시내 곳곳에서는 ‘설마(雪魔)의 흔적’을 씻어내려는 시민들의 복구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5일과 6일 이틀 동안 휴업을 했던 일부 상가 업주들은 상가 앞에 무릎까지 쌓인 눈을 치우고 있으며 시는 이틀간 중단됐던 생활쓰레기 수거에 나섰다.

시내버스와 택시 등 대중교통도 대부분 정상 운행됐으나 대청호변인 동구 추동과 천개동 마을 사이 4km 도로는 여전히 두절돼 천개동 마을 주민 50여명이 나흘째 고립된 상태다.

○…7일 오전 10시10분경 경남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쪽으로 가던 김모씨(47)의 승용차가 하행선을 달리던 대형트럭에서 날아온 눈덩이를 맞은 뒤 중심을 잃고 4m 깊이의 언덕 아래로 굴렀다. 이 사고로 김씨와 김씨의 아버지(75)가 숨지고 일가족 3명이 중상을 입었다.

또 6일 오전 8시6분경에는 대전 동구 세천동 경부선 세천역 부근에서 서울발 부산행 새마을호 열차가 역 구내를 통과하던 중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해 경부선 상하행선이 1시간반가량 불통됐다.

○…군은 중부지방에 폭설이 내린 5, 6일 2만여명을 제설 및 구호작업에 투입한 데 이어 7일에도 폭설피해를 본 농가와 도로 등에 3만여명을 투입하는 등 적극 지원에 나섰다.

육군 62사단과 1보급창 부대는 5일 밤 고속도로에 고립된 운전자 등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준 데 이어 6일에는 도로에서 제설작업을 벌였다.

○…30여시간 경부·중부 고속도로에 갇혀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낸 뒤 겨우 빠져 나가는 운전자들에게 도로공사측이 사과하기는커녕 통행료를 징수해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예민수씨(39·경기 광명시)는 “5일 남구미 톨게이트로 진입해 충북 영동에서 장시간 고립됐다가 중앙분리대가 열려 남구미로 회차했는데 도로공사측에서 왕복요금을 물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정연종씨는 도로공사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 33시간 만에 고속도로를 벗어났는데 요금을 달라고 해 적십자사에서 나눠 준 빵 봉지를 보여 주며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비난했다.

운전자들은 도로공사 홈페이지를 통해 통행료 환불을 정식 요청하는 한편 피해 보상과 국민감사를 청구하자는 사이버운동에 나섰다.

육군 32, 27사단 등은 충남 서천군 보령시, 충북 증평 청원군 등지에서 덤프트럭 등 중장비를 동원해 농촌의 무너진 비닐하우스 80여동과 축사 20여동을 복구했다.

공군은 각 지역 공항 활주로의 눈을 제거했으며 1항공 여단은 헬기를 동원해 계룡산 지역 야생조수를 위해 먹이를 살포하기도 했다.

○…경부고속도로상에서 27시간 동안 고립돼 있었다는 이구환씨(39·대전 대덕구 법동)는 6일 오전 “구호품을 지급했다고 하나 27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못 얻어 마셨다”며 통행권을 찢어버렸다.

이씨는 대전 집에 가기 위해 5일 오전 8시반경 기흥IC를 통해 경부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가 1시간 만에 옥산휴게소 부근에서 발이 묶였다. 오후 3시를 넘어 옥산휴게소로 30분 동안 걸어가 음식물을 구했고 밤으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추워졌지만 모포나 음식물 등 구호품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이씨는 “정부의 무대책 속에 지옥 같은 하루를 보냈다”고 비난했다.

청원=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대전=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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