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김 유족 고통의 세월]가난-실어증-이혼 16년 악몽

  • 입력 2003년 8월 15일 22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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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에 끌려가 조사받을 때 겨울바람이 스산하게 불었죠. 요즘도 바람이 서늘하면 그 때가 생각나 심장이 멎을 것 같습니다.”

수지 김씨의 여동생 옥경씨(46)는 언니가 간첩으로 내몰려 온 가족이 조사받던 1987년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를 친다.

김씨가 간첩이란 누명을 쓰자 가족들은 온갖 멸시와 천대에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루에 열두 번씩도 죽을 생각을 했지만 어린 피붙이를 생각하며 참았습니다. 시댁에서 내쫓긴 동생과 조카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죽을 수 없더군요.”

김씨 어머니는 10년간 ‘간첩 딸을 둔 어미’라는 주위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에 시달리다 결국 실어증에 걸려 1997년 한 많은 인생을 마감했다.

여섯 명의 형제자매도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실질적으로 가장 노릇을 했던 큰 언니는 당시 전매청에서 근무하다 돌연 ‘간첩 가족’으로 몰려 해고되자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병에 걸려 1987년 세상을 떴다. 옥경씨는 큰언니가 “옥분(수지 김)이 나를 전매청장 시켜준대. 여기 신문에 났어”라며 신문을 가져다줄 때마다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김씨 오빠는 술만 마시며 한탄하다 2000년 교통사고로 숨졌다. 김씨 조카들도 취업을 제때 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김씨의 다른 여동생들은 간첩 가족으로 몰려 이혼을 당했다.

당시 언론 보도로 겪었던 고통도 극심했다. 방송사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김씨가 간첩이었다고 보도해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더욱 심해지고 사생활이 과다 노출돼 괴로웠다.

옥경씨는 “16년의 고통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겠느냐”면서 “진실이 항상 승리한다는 것을, 그리고 시대가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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