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광현/韓銀노조 '이상한 훈수'

  • 입력 2003년 5월 9일 18시 22분


“금리정책은 금융통화위원회에 일임하고 정부나 정치권은 압력행사를 중단하라.”

한국은행 노동조합이 9일 ‘콜금리 인하 논의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금리인하는 한은 금통위가 결정하는 문제이니만큼 다른 사람들은 “입을 다물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한은 노조는 “전문가의 58%가 금리인하를 반대한다”는 자체 설문조사 결과를 함께 발표했다. 설문 대상자도 다양하다. 국회의원 10명, 교수 44명, 언론인 50명, 한은 직원 53명, 연구원 49명, 금융시장 참가자 70명 등 276명이다.

금통위가 아니면 침묵하라고 해놓고서 한은 노조만은 예외인 것 같다. 아니면 노조가 금통위보다 상위조직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활동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모호하다. 하지만 조합원의 권익옹호가 아니라 중요 경제정책 결정 사항인 금리인하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이고 ‘외부의 발언자제’를 요구하는 모습은 통상적인 노조 활동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금리인하는 요즘 가장 뜨거운 경제 이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함께 경기부양책의 핵심 사안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경기부양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고, 부동산투기만 조장하고 경기부양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 때문에 경제문제를 생각하거나 이해(利害)관계가 있다면 금리인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각자의 의견도 말할 수 있다.

재정경제부 같은 경제부처는 물론이고 여야 정치권, 투자은행, 민간 및 국책 경제연구기관 등이 금리인하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해외에서조차 때로 한국의 재정 및 통화정책에 대한 견해를 내놓는 세상이다.

노조까지 나서서 한은의 통화정책 독립성을 지키려는 충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한은은 재무부(현 재경부)의 남대문출장소’라는 오랜 피해의식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통화정책 독립은 외부의 발언이 아니라 스스로의 실력과 의지에 달려 있다.

한은에는 우수한 인력과 양질의 조사자료가 많다. 그러니 이제는 “누구든지 금리인하에 대해 말하려면 하라. 활발하고 진지한 토론에 한은은 얼마든지 응수하겠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금통위가 하겠으니 그 결정에 수긍하라”는 정공법(正攻法)을 펼 때가 됐다.

스스로 권위를 지켜야 할 한은 총재가 불과 보름 사이에 ‘금리인하 불가’에서 ‘금리인하 필요’로 오락가락하면서 중앙은행의 위신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김광현 경제부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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