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참사 한달]실종아내 찾아 역 헤매는 최양호씨

  • 입력 2003년 3월 16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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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도 아내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어요. 어느 날 갑자기 환한 얼굴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젠 현실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달 18일 오전 대구지하철 동촌역에서 1080호 전동차를 타고 영대병원역으로 가려다 실종된 김분희씨(46·여)의 남편 최양호씨(48·대구 동구 검사동·사진)는 지하철참사 발생 1개월이 되면서 이젠 자신의 가족에게 닥친 비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16일 말했다.

최씨는 최근 천주교 신자였던 아내가 자주 가던 집 인근의 동촌성당에 가 아내에게 작별을 고하는 기도를 했다.

‘당신은 너무너무 착한 사람이라 하느님이 편안하게 살라는 뜻에서 데려가신 것 같으니까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기 바랍니다. 그동안 고생시킨 것 용서하고 당신 몫까지 아이들을 잘 키우겠소.’

대구지하철 방화참사가 발생한 이후 최씨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오리온기획인쇄 관리과장인 그는 매일 아침 직장 대신 참사 현장인 중앙로역에 ‘출근’해 다른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오후 늦게까지 머물며 아내의 유류품이나 유골을 찾기 위해 부심했다.

그는 “직장에는 ‘당분간 못 나겠다’고 알렸다”며 “장례와 보상문제 등이 언제 마무리될지 모르겠으나 현재 심정으로는 이 일이 끝나도 한동안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힘들 것 같다”고 울먹였다.그는 또 매일 아침 일찍 큰아들(17·고 2년)과 작은아들(15·중 3년)을 깨워 미숫가루를 탄 우유 등을 아침으로 먹인 뒤 다독거려 등교시키고 빨래를 하는 등 아내의 역할까지 맡아 하고 있다.

한동안 울며불며 밥도 먹지 않고 어머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두 아들도 이제 외관상 많이 진정됐다.

특히 큰아들은 ‘약대에 진학하면 좋겠다’던 어머니의 말을 따르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트레일러 운전사로 일하다 펜팔로 알게 된 아내 김씨와 1985년 결혼한 최씨는 고생하던 아내가 영대병원역 인근에 낸 드레스가게가 이젠 기반이 잡혀가려는 시점에 떠난 것이 무엇보다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집사람은 늘 ‘지하철이 가장 안전하고 빠르다’며 다른 교통수단은 외면하고 지하철만 이용하다 변을 당했습니다. 아내와 같은 전동차에 탔다가 살아나온 동네 주민의 진술 등이 있는 만큼 당국은 하루속히 사망자로 인정하고 유골이라도 찾도록 해주기 바랍니다.” 당국에 대한 그의 요청이었다.대구=최성진기자 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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