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양로원 기증, 노인들 돌본 故이순덕 할머니

  • 입력 2002년 10월 28일 19시 56분


전재산을 털어 무료양로원을 운영하다 26일 세상을 떠난 고 이순덕 할머니가 생전에 장애인용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다. - 연합
전재산을 털어 무료양로원을 운영하다 26일 세상을 떠난 고 이순덕 할머니가 생전에 장애인용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다. - 연합
남편과 외아들을 잃은 뒤 전 재산을 털어 무료양로원을 지어 외로운 노인들을 보살펴 온 80세 할머니가 26일 세상을 떠났다.

고 이순덕 할머니(세례명 안나·80)는 1981년 인천 강화군 온수리 임야 4500평과 자택 등 고향의 땅과 집을 사회복지법인 대한성공회 성가수녀회에 기증해 양로원을 설립한 뒤 20여년간 다른 노인들을 돌보며 지내왔다.

이순덕 할머니는 6·25전쟁 때 갓 서른을 넘긴 나이에 남편을 잃고 외아들과 시부모, 시동생 3명의 생계를 짊어졌다. 삯바느질, 행상, 농사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개가하지 않고 오로지 외아들만을 바라보며 살던 이 할머니에게 1979년 또 한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교직 생활을 하던 외아들 최성복씨(당시 29세)가 간경변으로 요절한 것.

할머니는 그 뒤 성가수녀회에 고향 땅과 살던 자택을 양로원을 짓는 용도로 기증했다. 수녀회는 할머니의 세례명을 따서 양로원을 ‘성 안나의 집’이라고 명명했다. 이 집에는 현재 의지할 곳이 없는 할머니 24명이 기거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고인을 “남자처럼 씩씩하고 활달해 남을 잘 이끌었으며, 낡은 냄비라도 버리면 화를 낼 정도로 검소했다”고 입을 모았다. 15년 전부터 함께 지냈던 이복순 할머니(81)는 “고인은 생전에 밭일부터 부엌일까지 이곳의 모든 살림을 도맡았다”며 이순덕 할머니의 빈자리를 아쉬워했다.

이순덕 할머니는 10년 전부터 타고 다니던 장애인용 전동 휠체어가 올 5월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26일 영면했다.

이 할머니의 장례식은 28일 오전 성공회대 총장 김성수 주교의 집전으로 치러졌으며 유해는 고향인 온수리의 성공회교회 묘지에 안장됐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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