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마을 엿새만에 라면 지원…장비-인력 턱없이 부족

  • 입력 2002년 9월 6일 18시 35분


태풍 루사로 6일째 고립됐던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2리 주민 300여명은 5일 오후 구호물품을 갖고 산길을 통해 마을로 찾아간 강릉시청 공무원 1명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고립 지역을 우선 복구한다는 말만 믿고 기다리다 못해 빗물을 받아 마셔 배탈이 난 데다 생수와 라면 등 구호품이, 그것도 주민 일부에게만 돌아갈 분량이 6일 만에 도착하자 분노가 폭발한 것. 이 공무원은 “장비가 없어 도로를 연결하지 못했고 예산이 부족해 구호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 태풍 피해는 지역이 광범위한데다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어 지방의 인력과 장비만으로는 도로의 임시 개통 등 응급 복구에도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일선 지방 공무원들은 지난달 31일 이후 매일 피해지역을 찾아다니지만 인력 부족으로 복구 지원은 커녕 피해 실태와 필요한 구호품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늑장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응급 복구도 못하는 갑갑한 행정〓강릉시의 재해대책 예산은 기금을 포함해 50억원. 태풍 피해가 난 뒤 행정자치부에서 20억원의 특별교부금을 따로 받았지만 70억원으론 6개 고립지역 부근의 부서진 다리와 수리 시설도 고칠 수 없다.

강릉시는 건설교통부에 응급 복구에 필요한 굴착기와 덤프트럭 등 장비 220대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었지만 장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150대로 줄였다.

정부의 예산지원 계획이 마련되지 않아 220대를 지원받을 경우 하루 7000만원이나 드는 장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북 김천시의 경우 256대의 장비를 지원 받았으나 모두 외상으로 들여왔다. 김천시 관계자는 “응급복구비를 받는다 해도 한 달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돼 대책이 없다”며 “임시 교량 설치에 필요한 자재도 외상으로 구입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복구 장비 100여대를 외상으로 들여온 경북 성주군도 장비가 더 필요하지만 정부 지원 예산 규모를 알 수 없어 응급 복구 일정을 늦췄다.

지난달 6일부터 보름 가까이 계속된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본 경남 지역의 경우 중앙정부의 늑장 행정으로 복구가 지연되자 중장비를 전시처럼 강제로 동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장기 고립 우려〓강릉시는 끊어진 도로와 다리가 계속 방치되고 정부의 지원이 늦어지자 공무원들이 하루 약 30㎞를 걸어 주민들에게 음식물을 전달하는 원시적인 구호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5일에는 중앙재해대책본부 공무원 등 100여명이 분야별 피해 실사를 위해 강릉 시청과 현장을 방문, 시 공무원들이 동원되는 바람에 구호품이 전달되지 않아 고립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됐다.

강원 동해시의 한 관계자는 “응급 복구 단계에서 정부가 지방의 일을 방해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며 “고립지역 주민들은 매일 생존을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으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마땅한 해결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강릉〓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김천〓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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