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지역을 우선 복구한다는 말만 믿고 기다리다 못해 빗물을 받아 마셔 배탈이 난 데다 생수와 라면 등 구호품이, 그것도 주민 일부에게만 돌아갈 분량이 6일 만에 도착하자 분노가 폭발한 것. 이 공무원은 “장비가 없어 도로를 연결하지 못했고 예산이 부족해 구호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 태풍 피해는 지역이 광범위한데다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어 지방의 인력과 장비만으로는 도로의 임시 개통 등 응급 복구에도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일선 지방 공무원들은 지난달 31일 이후 매일 피해지역을 찾아다니지만 인력 부족으로 복구 지원은 커녕 피해 실태와 필요한 구호품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늑장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응급 복구도 못하는 갑갑한 행정〓강릉시의 재해대책 예산은 기금을 포함해 50억원. 태풍 피해가 난 뒤 행정자치부에서 20억원의 특별교부금을 따로 받았지만 70억원으론 6개 고립지역 부근의 부서진 다리와 수리 시설도 고칠 수 없다.
강릉시는 건설교통부에 응급 복구에 필요한 굴착기와 덤프트럭 등 장비 220대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었지만 장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150대로 줄였다.
정부의 예산지원 계획이 마련되지 않아 220대를 지원받을 경우 하루 7000만원이나 드는 장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북 김천시의 경우 256대의 장비를 지원 받았으나 모두 외상으로 들여왔다. 김천시 관계자는 “응급복구비를 받는다 해도 한 달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돼 대책이 없다”며 “임시 교량 설치에 필요한 자재도 외상으로 구입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복구 장비 100여대를 외상으로 들여온 경북 성주군도 장비가 더 필요하지만 정부 지원 예산 규모를 알 수 없어 응급 복구 일정을 늦췄다.
지난달 6일부터 보름 가까이 계속된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본 경남 지역의 경우 중앙정부의 늑장 행정으로 복구가 지연되자 중장비를 전시처럼 강제로 동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장기 고립 우려〓강릉시는 끊어진 도로와 다리가 계속 방치되고 정부의 지원이 늦어지자 공무원들이 하루 약 30㎞를 걸어 주민들에게 음식물을 전달하는 원시적인 구호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5일에는 중앙재해대책본부 공무원 등 100여명이 분야별 피해 실사를 위해 강릉 시청과 현장을 방문, 시 공무원들이 동원되는 바람에 구호품이 전달되지 않아 고립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됐다.
강원 동해시의 한 관계자는 “응급 복구 단계에서 정부가 지방의 일을 방해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며 “고립지역 주민들은 매일 생존을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으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마땅한 해결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강릉〓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김천〓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