部處 '살아남기 보고서' 남발

  • 입력 2002년 7월 9일 18시 15분


정부 부처들이 내년의 새 정권 출범 때 예상되는 조직 개편에 대비해 거액을 들여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한 ‘생존부(生存簿)’를 만들고 있어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생존부는 각 부처가 외부기관에 의뢰해 제작하는 각종 ‘조직 분석보고서’를 가리키는 말로 이들 보고서는 ‘정밀 직무분석’ ‘행정조직의 발전방안 연구’ 등의 제목을 달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실제로는 해당 부처 존립의 당위성과 권한 확대 논리 등을 담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행정자치부가 새 정권 출범에 대비해 이미 ‘정부 기능분석 작업반’이라는 특별팀을 구성, 각 부처의 기능 역할 성과 등을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각 부처가 자체적으로 생존부를 만드는 것은 불필요한 예산 낭비일 뿐만 아니라 부처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앙인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용역비 2500만원을 들여 한국행정학회에 의뢰해 ‘중앙인사관장기관의 효율적 운영에 관한 연구’라는 정책연구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중앙인사위원회가 ‘위원회’의 형태를 벗어나 더 강한 독립성을 갖는 ‘인사원’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소기업특별위원회도 지난해 12월 4000만원을 들여 한국행정학회에 의뢰해 ‘중소기업지원 행정체제의 발전 방향’이란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각 부처가 제안하는 중소기업 관련 정책을 국무회의에 상정되기 전에 중기특위가 사전 심의하는 행정절차가 마련돼야 한다는 등의 권한 강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에는 사무국 인력 보강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중기특위 관계자는 “행자부의 조직분석작업이 각 부처의 현상을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정권 교체에 따른 향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부처 스스로 생존전략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농림부도 용역비 8000만원을 들여 최근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의뢰해 올 연말까지 조직분석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이승희(李承姬) 위원장은 “정부 조직 개편 얘기가 곳곳에서 들려 불안한 마음에 청소년보호위도 최근 3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한국행정연구원에 의뢰해 10월까지 자체 조직분석 보고서를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해양수산부와 계약을 맺고 올 연말까지 조직분석보고서를 내기로 한 한국행정학회 김영평(金榮枰·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회장은 “그동안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행정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정부 조직이 개편됐기 때문에 각 부처는 이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부처들은 지난해 말과 올 초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직개편도 염두에 두고 일찌감치 각종 보고서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2500만원을 주고 ‘보건복지 행정 조직의 발전방안연구’라는 보고서를 내 현재의 ‘2실 3국 7관 35과’에서 ‘3실 3국 9관 42과’로 1실 2관 7과가 증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도 지난해 12월 1억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한국능률협회에 의뢰해 조직 직무분석을 했으나 금감원 측은 분석내용을 ‘대외비’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분석작업이었다”고 해명했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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