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서적 1220종 교도소반입 아직도 금지

  • 입력 2001년 11월 2일 18시 24분


‘자유로부터의 도피’와 ‘전환시대의 논리’ 등 국내외 명저들이 아직도 이적 표현물로 분류돼 교도소 내 반입 및 구독이 금지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법무부가 군사정권 시절 등 과거에 나온 판결을 토대로 이런 서적의 반입을 제한하는 것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진 법 운용”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적 표현물 목록 실태〓2일 ‘인권운동사랑방’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통해 입수한 ‘판례상 인정된 이적 표현물 목록’에 따르면 법원이 이적성이 있다고 판단, 법무부가 교도소 내 반입을 금지한 도서 및 유인물은 1220종에 달한다.

‘이적 표현물’ 목록에는 중국혁명 과정을 기록한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별’과 그의 부인 님 웨일스가 지은 ‘아리랑’이 포함돼 있다.

1월 고 조영래 변호사가 지은 노동운동가 전태일씨의 평전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과 리영희(李泳禧) 한양대 명예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0∼90년대 많은 대학생들이 읽었던 한완상(韓完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저서 ‘민중과 지식인’도 ‘이적 표현물’로 분류돼 있다.

▽논란과 문제점〓이들 서적은 72년부터 95년까지 법원이 국가보안법(이적물 소지)을 적용, 유죄를 인정한 판례에 의해 개별적으로 이적성이 인정된 것들이다.

문제는 이 책들에 대한 이적성 ‘딱지’를 뗄 마땅한 법적 구제절차가 없어 지금까지 교도소 내 반입이 금지되고 있다는 것.

‘인권운동사랑방’ 채은아 간사는 “일반인들도 시중 서점에서 쉽게 구해볼 수 있는 책들을 아직도 이적 표현물로 규제하고 있는 법 적용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표현의 자유도 제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무부 입장〓법무부는 “법원이 이적성을 인정한 것에 대해 교정당국이 이적 표현물이 아니라고 재분류하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문제의 서적이 이적 표현물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새로 나오지 않는 이상 기존의 판례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이는 ‘교도소 등의 안전과 질서를 해하거나 교화상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사유가 없는 한 수용자의 도서 구매 및 열람을 허가해야 한다’고 규정한 행형법 제33조에도 어긋난다고 법조인들은 지적한다. ▽해결책〓법조인들은 특정인이나 단체가 이적 표현물로 분류된 1200여종의 책을 대상으로 일일이 판결을 다시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김종훈(金宗勳) 변호사는 문제의 책들을 대상으로 교도소 등에 도서반입 신청을 낸 뒤 반입이 금지될 경우 이를 문제삼아 법원에 소송이나 가처분신청을 내는 방안을 제의했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교도소 안전과 질서를 해하거나 교화상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사유가 없는 한 수용자의 도서 구매 및 열람을 허가해야 한다' 고 규정한 행형법 제33조에 따라 규정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고 지적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