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상대 손배訴 봇물…“의혹만 제기하면 명예훼손”

  • 입력 2001년 10월 31일 18시 26분


지앤지(G&G) 회장 이용호(李容湖)씨 비리비호 의혹 등 최근의 각종 의혹사건을 다룬 언론보도에 대해 검찰과 사건 당사자 등이 “잘못된 보도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언론사들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최근 “고소만이 살길이다”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 이 같은 소송 사태가 정부의 ‘대(對)언론정책’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국가 공조직의 상징인 검찰의 자존심과 신뢰를 지키기 위해 검사들이 개별적으로 내는 소송”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송 봇물〓서울지검의 전현직 특수부 검사 11명은 10월30일 조선일보의 ‘검찰의 무(無)영장 불법계좌 추적’ 기사가 허위의 사실로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대검 과장(부장급 검사) 20명도 10월24일 검사들의 인사청탁 의혹 보도와 관련해 조선일보와 담당기자를 상대로 10억원의 소송을 냈으며 이 밖에도 일선 검사들이 10월 들어 낸 소송만 3건이 더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백궁지구 특혜 용도변경 의혹 보도와 관련해 성남시도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검찰이 수사 보도나 논평과 관련해 소송을 낸 경우는 99년 이후 몇 차례 있었지만 이번처럼 특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무더기 소송을 낸 것은 이례적인 일.

수사기관 외에 J산업개발 대표 여운환(呂運桓·47)씨와 김태정(金泰政) 전 법무장관 등 사건 관계자들도 소송을 냈다.

▽논란〓차병직(車炳直·참여연대 협동 사무처장) 변호사는 “검찰의 명예와 위신은 정당한 수사를 통해 세워나가는 것이지 소송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며 “비판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할 국가기관이 일일이 법적으로 대응해 결과적으로 언론의 입을 막으려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고검의 한 검사도 “소송을 통한 언론과 검찰의 대결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검사는 언론을 합리적으로 설득해야 하고 소송은 최후의 권리 구제 수단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택수(金澤洙) 변호사는 “언론이 과열경쟁 속에서 사실 확인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보도하는 것은 문제이며 이로 인한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입장〓이중훈(李重勳) 대검찰청 공보관은 “검찰이 제기하는 소송은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검사들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며 “‘고소만이 살 길’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은 아는 바도 없고 검사들의 소송 제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말했다.

<정위용·이정은기자>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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