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중단 누가 시켰나…국정원간부 거액수수혐의

  • 입력 2001년 9월 18일 06시 19분


검찰이 지난해 국가정보원 김형윤 전 경제단장의 금품수수 혐의 수사를 중단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과 관련한 의혹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됐다.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의 발표를 통해 드러난 이 사건은 정현준(鄭炫埈)한국디지탈라인(KDL)사장과 이경자(李京子)동방금고 부회장 등이 수백억원대의 금고 돈을 횡령하고 투자자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과정에 정치인과 금감원, 검찰 간부 등 정관계 고위층 인사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받았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지난해 5월 지앤지(G&G) 이용호(李容湖)회장을 긴급체포했다가 전격 석방하고 무혐의 처리했던 서울지검 특수2부(이덕선·李德善부장검사)에 배당됐다.

검찰은 10월27일 정 사장과 이 부회장을 구속하고 정관계 인사의 개입여부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핵심 의혹을 거의 밝혀내지 못한 채 11월14일 관련자를 기소하고 사실상 수사를 종결했다.

▽제기됐던 의혹〓정 사장은 검찰에 출두하기 직전 이 부회장의 정관계 인사 로비의혹을 맨 처음으로 제기했다. 그는 “이 부회장이 7개 상호신용금고를 자금세탁과 불법대출의 거점으로 이용했으며 이를 통해 고위층에 로비자금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 정관계 로비대상 리스트를 쥐고 있는 이 부회장을 추궁하면 행방이 묘연한 400억원 외에도 더 많은 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구속중인 지난해 11월6일 국회 정무위의 국정감사에서도 “이 부회장이 고위층 인사들을 많이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 부회장의 신양팩토링 개업식 때 여권 실세 정치인 두 명이 보낸 난 화분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또 “이 부회장이 금감원 간부와 검찰 인맥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그러나 “정관계 인사를 알지 못하고 더구나 로비를 벌인 적이 없다”며 “정 사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검찰 수사 결과〓검찰은 20여일 동안 특수2부 검사 전원을 투입해 수사했다. 검찰은 그러나 정관계 인사의 개입 의혹과 관련해서는 수사 시작과 함께 자살한 장래찬(張來燦)전 금감원 국장이 이 부회장측에게서 7억원을, 청와대 8급 직원인 이윤규씨(37)가 정 사장에게서 3억여원을 뜯어낸 사실을 밝혀내는데 그쳤다.

수사가 난관에 부닥친 데에는 이 부회장의 핵심 측근인 동방금고 유조웅(柳照雄)사장과 신양팩토링 오기준(吳基俊)사장의 해외도피가 영향을 크게 미쳤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의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당시 이기배(李棋培)서울지검 3차장(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은 “앞으로도 불법 대출된 돈의 행방을 추적해 계속 수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 단장에게 5000만원을 주었다”는 이 부회장의 진술을 확보하고도 끝내 수사에 나서지 않았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관련자 해명 "돈 받은 사실은 없다"▼

▽김형윤 국가정보원 전 경제단장〓“내 친구 소개로 이경자 부회장을 2차례 정도 만난 적은 있지만 돈을 받은 사실은 없다. 검찰에서 문의 전화도 없었고 조사 요구를 받은 일도 없다. 경제단장이라고 하니까 금융사건만 터지면 내 이름이 거론돼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건강도 챙길 겸 올 6월 정보학교로 옮겼다.”(17일 통화)

▽이덕선 당시 서울지검 특수2부장(현 군산지청장)〓연락이 되지 않아 17일 메모를 남겼으나 응답이 없었음.

▽당시 특수2부 주임검사〓“수사 내용이나 과정에 대해 말할 수 없다.”(17일 통화)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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