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금융비리]마포세무서 장부조작 진술서 고의누락 의혹

  • 입력 2001년 9월 16일 18시 57분


가짜 세금계산서를 떼어주는 회사인 RGB시스템 홍모씨가 KEP전자의 장부조작을 시인한 진술조서는 왜 마포세무서 조사과정에서 누락됐을까.

국세청은 16일 “진술조서는 별다른 내용이 아닌 만큼 단순한 사무착오였을 것”이라면서도 “국세청장 지시로 현재 전후 내막을 파악중”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의 이 같은 태도변화는 14일 밤 본보 보도 직후 “동아일보 기사는 사실무근”이라는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보낸 것과는 상당히 달라진 것이다.

진술서 누락의 고의성 여부는 현재로선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조서가 빠지면서 KEP전자는 특별세무조사라는 일생일대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만약 이용호씨 사건을 ‘어물쩍 축소처리’하려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 조서는 매우 불편한 존재. 따라서 어떤 경위로 누락됐는지, 누락을 지시한 사람은 있는지 등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씨는 또 RGB시스템이 설립된 것이 사실상 KEP전자 김모 부장(이용호씨 동서) 때문이라는 점도 시인했다. 홍씨는 “원래 김 부장을 알고 지냈고, KEP전자를 김 부장측이 인수하면서 내가 RGB시스템을 세웠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홍씨의 진술서는 KEP전자 사건을 ‘정당하게 처리했다’는 국세청 설명을 180도로 뒤엎고 있다.

조서 내용에 따라 KEP전자가 처리됐다면 세무당국의 단호한 조사가 불가피했다고 세무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상장기업이 세금계산서 장사꾼과 25억원대 무자료거래를 했고 △KEP전자가 부실기업 상태에서 인수되자마자 흑자로 돌아섰으며 △RGB시스템이 설립된 것이 KEP전자 김 부장의 권유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만약 마포세무서의 적절한 조치가 있었다면 이후 이용호씨의 △KEP전자 증자 △계열사자금 횡령 △보물선 주가조작 등에 따른 투자자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러나 KEP전자 사건은 이후 마포, 금천세무서를 거치면서 ‘단순한 세무절차 실수’를 이유로 ‘1억3000만원 가산세 납부로 매듭지어졌다.

당시 조서를 작성한 정모씨는 “기억이 전혀 없다”며 “문건을 직접 보기 전에는 진위여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누락됐던 진술조서가 드러나면서 이용호씨측 KEP전자가 만든 ‘마포(세무서) 대처방안’의 진실성도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다. 이 문건에는 “마포세무서가 계좌추적을 통해 KEP전자가 최근 입금시킨 돈이 RGB시스템에 물건을 판 뒤 받은 돈이 아니라는 사실(회계조작 사실)을 파악했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마포세무서는 “당시엔 KEP전자의 장부조작을 몰랐으며, ‘마포대처방안’은 작성자 자금담당 이모 부장이 이용호씨에게 로비자금 명목의 돈을 받아내기 위해 허위사실을 보고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홍씨는 조서에서 “KEP전자와 무자료거래를 했다”는 것을 시인했다. “KEP전자로부터 25억원어치 스피커 등 물건을 샀지만 현금거래만 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물건이 오고간 거래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겠다(즉 가짜세금계산서만 끊어줬다)”고 시인, 내부보고서 내용대로 마포세무서가 KEP전자의 장부조작 사실을 파악하고 있음을 분명히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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