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署 사기사건 등 본업 '개점휴업'…수사인력 시위현장에 배치

  • 입력 2001년 7월 6일 18시 30분


《지난달 29일 김모씨(21·여·경기 안양시)는 폭우 속에 서울 강남의 한 경찰서 수사과 수사2계를 찾았다. 경찰에서 다단계회사 피해자였던 김씨의 진술을 받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 하지만 수사2계 사무실은 텅 빈 채 직원 1명만 남아 있었다. 나머지 직원들은 검거령이 내려진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이 명동성당에 잠입했다는 첩보를 받고 출동한 것.

김씨는 “비를 맞으며 먼 길을 찾아갔는데 진술도 못하고 돌아오니 허탈했다”며 “시국사건도 중요하지만 서민의 편의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금융사기 등 각종 경제범죄와 민생 관련 사건을 다루는 서울 시내 각 경찰서 수사과는 요즘 이처럼 ‘개점휴업’ 상태다.

단 위원장 검거령과 최근 잇따른 민주노총 총파업, 도심시위 등으로 노조 간부에 대한 검거령이 내려지면서 수사요원들이 총동원됐기 때문이다.

특히 단 위원장이 농성 중인 명동성당 주변에는 관할 경찰서 수사2계 전직원은 물론, 서울 시내 30개 경찰서 수사2계 등에서 차출된 100여명의 수사관이 밤낮 없이 진을 치고 있다. 정원이 11명인 한 경찰서 수사2계는 단 위원장 검거에 2명, 공공연맹 노조 간부 검거에 8명 등 모두 10명이 차출돼 지난 일주일간 명동성당 주변에서 돌아가며 밤샘 근무를 했다. 명동성당에서 일주일간 밤샘근무를 했던 한 수사관은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금융사기 사건에 대한 수사를 빨리 끝내라고 재촉하면서 시국사범도 검거하라니 속이 탈 지경”이라고 말했다.

강남의 한 경찰서 간부는 “경제범죄에 대한 첩보는 계속 들어오는데 수사할 인력이 부족해 손을 놓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시위가 자주 발생하는 종로 중부 동대문 남대문경찰서의 수사2계 기획수사 실적은 서울시내 경찰서 가운데 하위권을 맴돌 정도다. 경찰서 수사과는 고소고발 사건을 담당하는 조사계와 서무업무를 맡는 수사1계, 금융사건을 수사하는 수사2계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편 경찰 일부에서는 불법집회와 시위 등 이른바 시국사범 수사에 민생범죄 관련 경찰력이 차출되는 구시대적인 행태는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강북의 한 경찰서 수사과장은 “과거 시국사건이 정권 유지와 관련된 정치적 문제여서 경찰 고위간부들이 과도하게 신경을 쓴 적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한 만큼 시국사범에 관한 경찰인력의 합리적 배치, 운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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