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폐업 첫날]병원3곳 전전하던 70代 끝내 숨져

  • 입력 2000년 6월 21일 01시 15분


의약분업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로 전국 대부분의 병원과 의원이 문을 닫은 첫날인 20일 국공립 의료기관과 보건소는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문을 연 국공립 의료기관의 응급실과 보건소에는 평소보다 환자가 30% 가량 늘었고 ‘오늘 진료하느냐’는 문의전화도 폭주했다.

이 가운데 일선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거부당해 일부 환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바람에 의료사고 시비도 여러 건 일었다.

▽이곳저곳 병원으로〓19일 오후 10시10분경 대구 남구 대명동 영남대의료원 수술실에서 대기 중이던 이모씨(77·경북 영천시 고경면 삼귀리)가 발병 14시간 만에 숨졌다.

이씨는 이날 오전 8시경 영천병원에서 ‘복막염’ 진단을 받았으나 “큰 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에 따라 대구의료원으로 옮겨져 이곳에선 ‘우측 동맥류 파열’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이씨는 “여기서는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말에 따라 이날 오후 4시반 영남대의료원으로 다시 옮겨졌고 오후 6시40분경 수술을 기다리다 심장마비 증세로 숨졌다는 것.

이씨 가족들은 “1차 진단 뒤 공립의료기관(대구의료원)으로 이송된 뒤 다시 영남대 의료원으로 옮겨지는 등 시간을 허비해 숨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남대의료원은 “정상절차에 따라 수술하려 했으나 환자가 고령이고 피를 많이 흘려 숨진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국립병원으로 가라”〓20일 오전 10시경 서울 중구 을지로6가 국립의료원 응급실에는 10시간 이상 여러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해 위독해진 정모씨(39·서울 강북구 미아동)가 이송됐으나 이날 밤 9시 현재 계속 의식불명 상태다.

전날 밤 감기약을 먹은 뒤 지병(폐부종, 심장부정맥)이 재발해 사경을 헤매던 정씨는 밤 11시경 동네 D의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20일 새벽 다시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위독하니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 정씨의 가족들은 D의원의 추천대로 강남성모병원 등에 연락했으나 “진료할 수 없다. 국립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듣고 수소문 끝에 겨우 국립의료원에 왔다고 설명했다.

이때 이미 호흡곤란에 전신마비 상태였던 정씨는 응급조치로 심장은 뛰기 시작했으나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다. 부인 장모씨(40)는 “국립의료원에는 남편의 병력과 약물 데이터가 없어 치료가 어렵다”며 “평소 다니던 큰 병원들이 치료를 거부해 안타깝다”고 발을 굴렀다.

▽불안에 떠는 임산부들〓신모씨(41·여·서울 성북구 하월곡동)는 20일 동네 의원의 폐업으로 출산할 병원을 찾아 3시간여를 헤매다 간신히 오전 11시경 경희의료원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이날 새벽 신씨는 산통이 시작돼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의원에 연락했으나 “우리는 폐업에 들어갔다”는 매몰찬 대답과 함께 출산시설도 없는 보건소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천신만고 끝에 출산한 뒤 신씨는 경희의료원측으로부터 “임신중독증세가 있어 조금만 늦었어도 자칫 산모와 아이가 모두 위험할 뻔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응급조치 미흡’ 시비〓이날 광주에서는 중환자실에서 구급차로 옮겨지던 환자 양모씨(69)가 병원측이 산소호흡기를 부착하지 않는 등 응급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숨졌다며 가족들이 사인규명을 요구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선대인·차지완기자·대구〓정용균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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