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도상씨 부부피살 수사]'면식범 우발범행'에 무게

  • 입력 2000년 4월 6일 19시 38분


문도상씨 부부 살해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일단 이 사건이 강절도 전과자 등 우범자에 의한 단순 강도사건일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문씨 집안의 금품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다 우범자들이 겨냥하기에 20층에 위치한 32평 크기의 문씨 집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주요 이유다.

창문이나 거실문 등에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고 집안에 신발자국이 없는 점도 범인들이 문씨 부부가 열어주는 현관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

그러나 이같은 사실들을 바탕으로 면식범의 소행일 것이라는 선까지는 대개 추론이 가능하지만 그 이후는 며칠째 오리무중이다.

우선 잔인한 살해방법으로 볼 때 ‘면식범의 원한에 찬 범행’이라는 추정이 있지만 그렇게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밤늦게 문을 열어주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게다가 문씨 부부는 평소 가까운 친지를 제외하고는 외부인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주변의 진술 때문에 그런 의심은 더욱 힘을 얻는다.

더욱이 범인이 일부러 옷을 흩뜨려 놓은 것 같은 작은방을 제외하고는 집안이 깨끗하게 정돈된 상태이고 거실에 마시다 만 커피잔이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문씨 부부가 범인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범행동기등 오리무중▼

또 이들 부부의 주변사람들이 문씨 부부가 “누구에게 원한을 살 성격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 사건을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으로 단정짓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물론 문씨 부부가 ‘범인의 원한’을 미처 알지 못하고 우호적으로 대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범행 동기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경찰은 문씨 부부와 평소 잘 아는 범인이 문씨 부부에게 무엇인가 부탁하다 거절당하자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문씨 집 주방의 칼이고 문씨 부부의 머리를 친 둔기도 문씨 집에 있던 양주병으로 추정되는 만큼 ‘계획된 범행’은 아닐 수 있다는 것.

▼"특별한 원한관계 없어"▼

경찰은 이 경우 범인이 지난해 12월 문씨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아파트를 팔고 경기도 용인 수지의 아파트로 이사하기 위해 현주소지에 잠시 전세 살면서 1억원 정도를 현금과 양도성예금증서로 보관중인 사실을 알고 이를 빌려달라고 부탁했거나 이미 문씨 부부에게 돈을 빌렸던 범인이 이들에게 채무 포기각서를 쓰도록 부탁했다가 거절당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시체가 놓였던 안방 화장실에서 백지와 볼펜 등이 함께 발견된 점이 그런 가정에 힘을 더한다.

그렇다면 문씨 부부가 잔인하게 살해된 것도 원한 때문이라기보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이 면식범인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이들을 ‘확인 살해’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을 수도 있다고 경찰은 추정한다.

<이현두·민동용기자>ruch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