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로비 최종보고서/각계반응]"國基 뒤흔든 범죄행위"

  • 입력 1999년 11월 26일 19시 46분


▼'최종보고서' 시민반응▼

“도대체 누구를 믿을 수가 있나….”

옷로비 의혹사건을 축소은폐하고 뻔뻔스러운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한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분노가 분출하고 있다.

박주선(朴柱宣)전청와대법무비서관이 옷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내사결과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축소보고했으며 김태정(金泰政)전법무부장관에게 이 문건을 전달한 사실이 본보 보도를 통해 확인되자 시민단체들은 26일 일제히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관련자들의 사법처리를 촉구했다.

이들은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직동팀 해체와 대대적인 검찰개혁, 특별검사제의 강화 등을 주장하며 이에 대한 김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했다.

경실련은 성명에서 “동아일보에 보도된 문건이 ‘사직동팀 최종보고서’임이 밝혀진 이상 옷로비사건이 국가기관에 의해 조작됐음이 명백해졌다”며 “박비서관과 김전장관을 포함해 축소 은폐조작 관련자 전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엄정한 사법처리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이어 “이들은 특검팀에 출두해 사직동팀의 내사과정을 모두 밝히고 일체의 문건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참여연대도 성명을 통해 “현직검사를 청와대법무비서관으로 임명해 고위층 사정업무를 맡긴데서 일찌감치 이런 결과는 예고됐다”며 “정치검찰에 의해 청와대가 농락당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인물을 법무비서관에 기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청와대의 고위간부가 국가문서를 사적으로 유출하고 국민을 기만했다는 사실은 현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이라며 관련자의 사법처리와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정일순(鄭日順)씨에 대한 특별검사팀의 영장이 또 다시 기각된 것에 대해 특별검사팀의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민주노총 손낙구(孫洛龜)교육선전실장은 “정씨의 영장기각은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결정”이라며 특검팀의 권한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회사원 진여훈씨(30)는 “검찰이고 정부고 믿을 × 하나 없다”며 “힘없는 서민들만 죽어나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낀다”며 한탄했다.

〈김상훈·이완배기자〉corekim@donga.com

▼검찰·법조계 반응▼

끝없는 후회와 어수선함이 뒤범벅된 하루였다.

“사직동팀이 2월초 대통령에게 진실을 보고했었더라면….”

“6월 검찰수사때 사모님구하기라는 인상을 남기지말고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연정희(延貞姬)씨가 뒤늦게나마 8월 청문회에서 ‘아닙니다’를 되뇌지않고 진실을 밝히며 국민앞에 사죄했더라면….”

대검찰청과 옷로비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지검은 26일 당혹감 속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핵심요직’으로 통하던 박주선(朴柱宣)대통령법무비서관이 사직한 것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서울지검의 A검사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데서 비롯됐다고 풀이했다. “박전비서관이 대통령에게 ‘총장부인이 호피무늬코트 구입하지 않고 곧바로 돌려줬다’고 보고했는데 어떻게 연씨가 말을 주워담을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B검사는 특별검사가 연씨에 대한 위증사실을 밝혀낸 뒤 당시 수사참여 검사가 했던 푸념을 들려줬다. 거래장부마저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연씨가 옷가게 주인과 정확하게 입을 맞춰 진술하는 이상 진실을 밝혀내기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검찰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항변이다. 형사부 소속 C검사는 “검찰이 거듭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면서도 맹목적 검찰비난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아픈 환부를 도려내는 고통은 뒤따르겠지만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검찰밖 법조계 분위기는 꽁꽁 얼어붙은 날씨만큼이나 싸늘했다. 민변 소속 변호사들은 대통령 비서관의 축소보고를 국기(國基)를 뒤흔든 범죄로 규정했다. 민변소속 임영화(林榮和)변호사는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 행위에 무슨 변명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임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옷로비의혹의 종결이 아닌 ‘사태의 시작’이라며 진통이 따르더라도 사회의 기본틀을 바로잡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변소속 박성호(朴成浩)변호사는 “경찰청 소속이면서 검찰을 떠난 법무비서관의 지휘를 받는 기형적 수사기구인 사직동팀이 사병화(私兵化)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며 즉각 해체를 주장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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