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문건파문]鄭의원-李기자 누가 거짓말 하나?

  • 입력 1999년 10월 29일 20시 54분


“누구 말이 진실인가.”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에게 ‘언론대책문건’을 전달한 제보자가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사건의 실체가 미궁(迷宮)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의원과 제보자인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의 말이 완전히 엇갈리기 때문이다. 우선 문건의 최초 입수 경위부터 판이하다.

정의원은 9월초 의원회관 사무실을 찾은 이기자로부터 “이종찬국민회의부총재가 나를 불러 ‘이강래(李康來)전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이 문건을 작성해 가져왔는데 어법 표현 등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쳐 달라’고 해 고쳐줬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기자는 “6월말경 이부총재 사무실을 들렀을 때 팩스상태의 문건을 발견하고 팩스번호 등을 가린 채 복사해서 가져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정의원의 얘기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어떤 정치인들이 기자들에게 그렇게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또 정의원은 이기자로부터 “이전수석이 문건 작성자”라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기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다만 ‘이전수석이 이부총재와 가까운 관계인 만큼 그럴 수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는 말을 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문건 전달 당시의 상황 역시 다르다. 정의원은 “이기자가 문건을 전달하면서 ‘언론인으로서 현 정부의 언론에 대한 시각이 너무 역겨워 (정의원이) 한번 보라고 가져왔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기자가 자발적으로 건넸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기자는 “정의원과 현 시국 전반에 관한 대화 도중 문건 얘기를 꺼냈더니 정의원이 관심을 보였다”며 “다음에 만나 ‘보안을 지켜야 한다’고 하니까 정의원이 ‘참고로 보기만 하겠다’고 해서 복사하는 것을 막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 대한 보고 여부도 논란거리. 정의원은 “이기자가 ‘이부총재로부터 문제의 문건이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고 했지만 이기자는 “말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25일 정의원의 폭로 후 진술도 엇갈린다. 정의원은 폭로 후 이기자를 한두차례 만났는데 “잘 했다. 정부가 많은 것을 느낄 것이라고 하더라”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기자는 사건 직후 정의원에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며 ‘항의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러자 정의원은 “어쨌든 이종찬 이강래가 한 것 아니냐.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는 것 아니냐”며 ‘유도성’ 발언을 했다는 게 이기자의 주장이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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