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로비 청문회]코트배달시기 왜 다를까?

  • 입력 1999년 8월 23일 19시 40분


‘옷 로비’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는 출발부터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다. 대대적인 검찰 인사를 앞둔 시점에서 검찰 인사권을 쥐고 있는 법무부 장관 부인이 고소한 사건을 인사대상인 검찰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수사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은 김태정(金泰政)전법무부 장관의 부인 연정희(延貞姬)씨가 연루된 부분에 대해서는 연씨와 그의 운전사 파출부 등 측근들의 진술만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도 연씨 누명벗기기에 급급했다는 인상을 줬다.

23일 이 사건에 대한 국회 청문회에서 강인덕(康仁德)전통일부 장관 부인 배정숙(裵貞淑)씨는 이같은 검찰 수사를 뒤엎는 증언을 했다. 그의 증언은 몇가지 중요한 대목에서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다 옷로비 사건 당시의 정황과도 맞아 검찰 수사의 신뢰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들게 하고 있다.

가장 크게 논란의 대상이 되는 부분은 호피무늬 반코트 배달 시기. 검찰은 연씨가 지난해 12월26일 배씨와 함께 우연히 라스포사에 들렀다가 호피무늬 반코트를 입어보고 벗어놨는데 라스포사 정일순(鄭日順·여)사장이 연씨 모르게 운전사를 통해 배달시켰다고 발표했다.

배씨는 그러나 라스포사에 들른 시점이 이보다 일주일 앞선 12월19일이라고 증언했다.

배씨는 “연씨와 함께 라스포사에 가 밍크코트와 호피무늬 반코트 등을 입어본 것은 지난해 12월19일이 분명하며 그날 이외에는 라스포사에 가서 코트를 입어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배씨는 특히 “그날은 강창희(姜昌熙)전과학기술처장관의 자녀 결혼식이어서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의상실에 갔기 때문에 기억이 틀릴 수 없다”고 말했다. 강전장관측도 자녀 결혼식이 배씨 기억대로 지난해 12월19일 있었다고 말했다.

또 검찰은 연씨가 문제의 코트를 입은 것을 봤다는 김정길(金正吉)전행자부장관 부인의 진술이 보도되자 “입은 것이 아니라 팔에 걸치기만 했을 뿐”이라며 연씨를 위해 군색한 변명을 했다.

어쨌든 배씨 증언이 맞는다면 연씨는 지난해 12월19일부터 반환시점인 올해 1월5일까지 17일간 문제의 코트를 보관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17일간의 보관’은 코트를 받을 의사를 추정케 하는 근거라고 법조인들은 지적한다. 또 이는 ‘코트를 받을 의사가 없이 바로 돌려줘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검찰의 결론을 뒤흔드는 것이다.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고급 의상실 출입의 ‘주연’과 ‘조연’에 대해서도 배씨는 논란이 되는 진술을 했다. “고급 의상실 출입은 자신이 권유한 것이 아니라 주로 연씨의 권유로 동행했다”고 한 것. 검찰 수사결과는 배씨가 주도적으로 장관부인들을 이끌고 고급 의상실에 다닌 것처럼 기록돼 있다.

배씨는 또 옷값 2400만원 대납 요구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검찰이 수사를 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고 말했다.

배씨의 증언은 검찰수사가 특정인을 위해 짜맞추기식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수형·김승련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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