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훈장의 '발언권'

  • 입력 1999년 8월 20일 21시 43분


훈장이나 상은 받아도 화제지만 뿌리쳐도 화제가 된다. 아니, 받을 경우 얘깃거리의 범위는 오히려 좁다. 축하인사나 받고 잊혀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안받는다고 할 경우 더 큰 반향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물의가 되고 더러 국제적 토픽으로 이어진다. 노벨상을 거절해서 그것을 받은 것보다 유명해진 사람들도 있다. 훈장이나 상에 담긴 ‘발언권’의 양면성이라고나 할까.

▽사상계 발행인이었던 고 장준하씨에게 98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될 뻔 했으나 유족들이 뿌리쳤다.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고인에 대한 훈장으로서는 격이 낮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이효재씨는 96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는 “5공인물과 함께 훈장을 받기 싫다”는 것이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정부가 주는 문화훈장을 거절했었다. 천황제를 비롯한 ‘올가미’에 묶인 일본에 대한 비판의 자세에서였다고 한다. 일본 연극계의 산 역사로 통하는 스기무라 하루코라는 배우도 문화훈장을 뿌리쳤다. 그저 ‘훈장 무게를 느끼지 않고’ 연기로만 승부하고 싶다는 이유에서 였다. 러시아의 솔제니친도 지난해 옐친대통령이 주려고 한 훈장을 거부했다. “옐친이 나라를 파국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라는 이유.

▽훈장을 버림으로써 거기 담긴 ‘발언권’을 행사한 경우들이다. 전국가대표 하키선수 김순덕씨의 훈장반납 선언도 작지만 큰 파문이었다. 씨랜드 화재참사로 일곱살난 아들을 잃은 그녀는 나라와 행정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그렇게 터뜨렸다. 그러나 행정자치부의 결론은 ‘훈장은 탈 수 있을 뿐 되돌려 줄 수는 없다’는 것. 상훈법을 검토해서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훈장을 패대기치면서까지 절규한 메시지만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충식 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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