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랜드 화재]『불속서 얼마나 엄마를 불렀니』

  • 입력 1999년 7월 2일 19시 23분


경기 화성군 씨랜드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의 희생자 유족들이 2일 오후 화재 현장을 찾았다. 이날의 현장 방문은 ‘두눈으로 직접 현장을 확인해야겠다’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마련됐다.

서울 송파구 강동교육청 분향소에 모여있던 유족 50여명이 화재현장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후 12시 반.

유족들은 불에 타 앙상한 뼈대만 남아있는 건물을 보자 마치 숨진 자녀들이 건물안에 남아 있기라도 한듯 애타게 이름을 불렀다.

일부 유족들은 ‘건물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제지하는 현장관계자들을 뿌리치고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건물3층의 301호로 올라갔다.

화염에 녹아 찌그러진 컨테이너의 철제 천장과 한뼘이상 바닥에 쌓여있는 잿더미….

“가현아 나현아 이 안에서 얼마나 엄마 아빠를 불렀니….”

쌍둥이 자매의 아빠 고석(高錫·37)씨를 비롯한 10여명은 자녀들의 흔적들을 하나라도 더 찾으려는듯 잿더미를 맨손으로 뒤져가며 아직도 수거되지 않은 유류품을 찾기 시작했다. 재와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 유류품이지만 그 속에 자녀들의 체온이 남아 있기라도 하듯 잿더미 속을 샅샅이 뒤져 먹다버린 음료수병까지 비닐봉투에 가득 담았다.

유족들의 슬픔은 이어 어린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어른들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유치원장과 교사들이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몰랐다는게 말이 됩니까.”

유족들은 유치원장 및 수련원직원들이 사고현장 주변에 있었다는 주장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전부 다시 수사할 것’을 사고대책본부 관계자들에게 요구했다.

어른 희생자중 한 사람인 채덕윤씨(26)의 아버지인 채춘수씨(52)는 “3층 건물을 지으면서 철근 하나 안쓰고 이렇게 날림으로 지은 건물은 처음 본다”면서 “이런 건물의 건축허가를 내준 공무원들이 정말 국민의 공복입니까”라고 반문했다.

유족들은 1시간여의 현장확인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수련원 어디엔가 자녀들이 남아 있기라도 하듯 모두들 젖은 눈으로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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