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회장 「소몰이 訪北」]판문점에 통일염원 메아리

  • 입력 1998년 6월 16일 19시 30분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5백마리의 소떼와 함께 남북교류와 이산가족의 상봉에 대한 뜨거운 염원을 뒤로 하고 16일 오전 판문점을 통해 역사적인 방북길에 올랐다.

○…정씨는 아침 8시경 임진각에 도착해 전날 밤 충남 서산목장으로부터 미리 운송돼 기다리고 있던 소떼와 합류한 후 판문점으로 들어갔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도착한 정씨와 소들은 두 갈래로 나누어졌고, 정씨 일행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잠시 머무르는 동안 소들은 트럭에 실린 채 오전 9시부터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옆에 임시로 만든 도로를 따라 군사분계선을 넘기 시작했다. 마지막 트럭이 군사분계선을 넘은 후 정씨는 오전 9시55분경 평화의 집에서 나와 군사분계선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사무실을 통해 오전 10시 북으로 넘어갔다.

○…정씨는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향땅을 밟게 돼서 반갑다”면서 감회어린 표정을 지었다. 정씨는 혼자서 발걸음을 옮기기에 다소 힘겨워하는 듯했고 동생 세영(世永)씨의 부축을 받아 폭 10㎝의 파란색 선으로 표시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북측에서는 송호경(宋鎬京)북한 아 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비롯한 20여명의 환영객들이 중감위회의실 북측 출입구 앞쪽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정씨 일행을 맞았다. 송부위원장은 반가운 표정과 함께 “정선생이 오신 것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며 정씨의 손을 잡고 인사했다.

○…북한측 지역에 도착한 정씨는 수행원 2명의 부축을 받아 북측이 마련한 벤츠승용차에 올랐고 일행은 승용차 7대와 미니버스에 분승해 통일각으로 향하다가 판문각으로 이동했다. 정씨 일행이 당초 예정과 달리 곧바로 평양으로 출발하지 않고 판문각으로 향하자 관계자들은 “아마도 환영행사를 갖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한편 정씨 일행보다 앞서 15일 중국 베이징(北京)을 통해 입북했던 박세용(朴世勇)현대상선 사장 등 선발대 7명은 이날 오전 8시40분경 판문각에 도착해 2층 베란다에서 정씨 일행을 기다렸다. 북한측도 양장을 화사하게 차려입고 꽃다발을 든 8명의 여성을 내보내 정씨 일행을 맞았다.

○…북측은 이날 서산목장에서 판문점까지 소들을 운반한 남한측 트럭 운전사들에게 백두산 들쭉술 1병, 인삼곡주 1병, 여과담배 10갑씩을 선물로 줬다. 운전사들은 통일각 옆 공터에서 소를 인계하고 돌아서자 통일각에서 대기하고 있던 북한의 젊은 여성들이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선물을 주었다고 말했다.

○…정씨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으로 들어가기 전, 임진각에서 열린 환송행사에는 3백여명의 취재진과 5백여명의 환송객들이 그의 방북이 본격적인 남북교류와 이산가족 상봉시대의 첫 걸음이 되기를 기원했다.

행사장 주변은 특히 실향민들이 ‘정회장님 가시는 길, 통일의 길’ ‘서산우공(牛公)발걸음, 민족통일 첫걸음’ 등 환송 격문을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나와 열렬히 환송.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이른 아침부터 역사적인 정회장의 방북을 돕기 위한 준비로 남북 양 지역이 모두 분주한 모습이었다. 소떼가 인도되기 30분전부터 북측지역에서는 북한병사 수십명이 도열하기 시작했고 판문각 주변에서는 푸른색 양복 차림의 북측 관계자 3,4명이 바쁘게 움직였다. 북측은 평소와 달리 새벽부터 대남방송용 스피커를 통해 잔잔한 음악을 흘려보내 긴장과 대결의 장소인 판문점도 이날만큼은 평화롭게 느껴졌다.

○…소떼 인도시간인 오전 9시가 가까워오자 북한측 기자 4,5명이 방송용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관계자들은 북측도 정회장의 방북을 생중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떼를 실은 트럭이 판문점에 도착해 일렬로 늘어서자 남북 적십자사 관계자들은 인계 인수절차를 밟았고 그 사이에 소들은 새로운 북녘 생활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탓인지 ‘음메에 음메에’하고 울었다.

소들은 이어 군사분계선을 넘었고 통일각 옆 공터에서 트럭 채 북한측에 인계됐다. 이에 앞서 남북한은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에서 적십자연락관 접촉을 갖고 방북자 명단과 운전사 명단, 검역증을 주고 받았다.

〈판문점〓공동취재반〉

○…정씨는 이날 아침에도 평소처럼 5시40분경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서 기상, 백반 정식으로 가볍게 식사를 한 뒤 6시7분경 서울53가 6666호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타고 계동 사옥으로 출발. 차에 오르기전 취재진에게 “고향에 가게돼 기쁘다”고 짤막하게 소감을 밝힌 정회장은 “좋은 꿈 꾸었느냐”는 질문에 “돼지꿈을 꾸었다”고 대답.

오전 6시20분경 계동 사옥에 도착한 정회장은 구내 이발관으로 직행, 20여분간 머리를 손질. 정회장은 사옥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직원 1천여명이 태극기와 현대 깃발을 흔들며 환송하자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으로 가 방북 수속.

〈이명재·금동근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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