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잠깐만]이후용/무질서…쓰레기… 아이들에 민망

  • 입력 1998년 5월 13일 07시 02분


관악산 철쭉제를 구경하려고 벅찬 기대에 부풀어 모처럼 애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서울대 앞 관악산 입구에서부터 행락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수많은 음식점과 매점에서는 음식 냄새가 코를 진동시켰으며 보행 도로변에는 멋진 돌덩이로 석축을 쌓았고 호수공원은 화려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얼른 보기에는 산뜻했지만 유심히 살펴보니 외부에서 구입한 돌로 건설한 듯했고 석축공사가 끝난 뒤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포장도로는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위를 공무를 수행하는 트럭들이 음식물을 바리바리 실은 채 보행자들을 비집고 꼬리를 물고 가느라 흙먼지가 일었다. 행사장인 1광장과 2광장 주변에서 철쭉꽃은 한송이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시든지 오래된 철쭉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일부 행락객들은 주위의 눈총에 아랑곳없이 먹고 마시고 춤추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후가 되자 술병과 플라스틱 용기들이 산처럼 쌓여 나뒹굴었으며 음식물 쓰레기는 계곡에 흘러 내렸다.

‘관악산을 살리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현수막이 여기저기에 걸려 있었고 수백명의 공무원과 관련단체 요원들이 보였지만 자연을 보호하고 질서를 지키자고 선도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군중들 틈에서 주민들에게 인사하기에 바쁜 한 지방선거 후보예정자만이 눈길을 끌었다.

관악산은 이젠 더이상 서울시민의 안락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 즐거우면 된다는 자세로 산을 찾는 이상 관악산은 지금보다 더 멍들어 갈 것이 뻔하다.즐거운 마음으로 산을 찾았다가 안타까운 장면만 목격하고 씁쓸하게 돌아왔다. “어른들은 기초질서를 지키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하겠어요.” 아들녀석의 푸념이다.

이후용(서울 관악구 봉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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