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결과 발표문 요지/간첩 고영복 사건]

  • 입력 1997년 11월 20일 20시 24분


○고영복은 그동안 보수우익 교수로 행세하면서 한국사회학회회장 현대사회연구소장 한국문화정책개발원장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 등 각종 사회활동을 통해 저명인사로 평가받아왔으나 ―서울대 재학 당시 6.25전쟁이 발발하자 의용군에 자진입대하였다가 생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바 있었고 ―본인 스스로 재학시는 물론 서울대 교수 재직시에도 내심 사회주의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그의 삼촌 고정옥도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 6.25당시 월북, 김일성대 교수로 재직했던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그동안 철저하게 신분을 위장해 왔음이 드러났음 ○고영복의 포섭된 경위와 활동상황을 보면 ―61년9월경 이화여대 강사로 재직시 남파공작원이 찾아와 6.25 당시 월북하여 사리원 사범대 교수로 재직중인 서울대 사회학과 동창생 장내윤의 소개 서신과 월북한 삼촌 고정옥의 소식을 전달하며 접근한 남파공작원에게 포섭된 후 ―공작금으로 미화 1천달러 및 난수표 등 통신문건을 수수하고 ―「서울대를 중심으로 진보적인 청년학생들 속에서 조직사업을 전개하라」는 지령을 받고 「공수산」이라는 공작부호까지 부여받은 것으로 밝혀졌으며 ○66년7월 남파된 여자공작원과 접선하여 ―성북동에 있는 하숙집을 은신처로 소개해주고 ―공작원이 제주도에 가서 대신 북한에 안착신호를 쳐달라고 하자 비행기편으로 제주우체국에 도착, 「무사히 도착하였음」이라는 전보를 발송, 당시 우체국에서 타전하는 모스부호를 북한에서 수신토록 하였으며 ―61년 수령한 난수표를 분실하여 소형 병속에 은닉된 새로운 난수표를 수령하였음 ○또한 73년3월과 7월 등 2차에 걸쳐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북측 자문위원으로 위장한 통일전선부 공작원 강장수의 안내를 받았는데, 특히 73년7월 회담시 ―강장수로부터 은밀히 「남측에서 내일 중대한 수정 제의를 한다는 정보가 있는데 무엇이냐」는 메모를 받고 ―동일 저녁 평양 숙소에서 작성한 「회담 마지막 날 이산가족 확인 및 상봉을 위한 면회소 설치 등 구체적인 제의가 있을 것이다」는 내용의 메모를 강장수에게 전달, 우리측 회담전략을 사전에 제보해준 것으로 드러났음 ○특히 현재 남파간첩 최정남이 소속한 사회문화부 공작담당과장으로 지금까지 다섯번이나 남파경험이 있는 김낙효(본명 윤택림·54)가 89년6월 남파되었을 때 5회 접선 ―공작원의 활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서울대 사회학과 동창생이 운영하는 충정로 소재 「십자」 기원의 작은방을 2개월간 빌려 김낙효의 거점으로 제공하고 ―공작원으로부터 서울대 사회학과 김모교수를 소개해 주고 남한의 핵무기 개발능력과 경제현안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달라는 지령을 받고 ·김모교수 문제는 알아보겠다고 약속하고 ·핵무기 문제는 「박정희대통령이 미국의 견제로 원자탄을 만들지 못했다」는 등 내용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영문 타자기로 우리말을 영어 알파벳으로 쳐서 공작원에게 보고하였으며 ―김낙효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다니며 시흥시 월곶동 배나루터 전신주 밑에 공작장비를 매몰하는 「드보크」를 약정하고 ―앞으로 남파될 북한공작원과 접선시 신분확인용 인식표로 사용키 위해 구리로 목걸이를 제작, 상호 반쪽씩 나누어 소지하였으며 ―위험상황 발생시 해외로 도주, 접선키로 하고 홍콩 중국 등 2개소의 연락주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고 ○이번 남파된 최정남 부부간첩과는 9월10일∼10월22일간 자신의 봉천동 사무실에서 4회에 걸쳐 접선하며 ―89년 남파간첩 김낙효가 제작한 반쪽 목걸이로 신분을 확인한 후 북한에서 그간 공로로 「공화국 창건기념 메달」과 노동당 창건 기념 「조국통일상」이 수여되었다는 사실을 전달받고 ―최정남이 『우리가 온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염려하자 오히려 『북이면 어떠냐』라고 거리낌없이 대답하였으며 특히 최정남 부부로부터 「대선후 대북정책 전망, 슈퍼 301조의 영향, 학생운동 전망, 북―미관계」 등 4개항에 대해 정세 분석보고서를 작성하라는 메모 지령을 받고 ―대선에 누가 당선되더라도 대북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북―미 연락사무소는 불원간 개설될 것이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던 중 11월1일 다른 고첩망으로 추정되는 자로부터 전화로 『지금 위급상황이니 급히 베이징(北京)으로 출국하여 북한대사관으로 들어가라』는 연락을 받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최정남이 지령한 메모지와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 초안 2장을 찢어 휴지통에 버린 것을 ―수사관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회수하였는바 고영복 교수는 61년 포섭된 이후 철저히 신분을 감추고 36년간 북한공작원 6명을 상대로 간첩행위를 해온 우리 사회 상층부에 침투한 「엘리트 지식인」 고정간첩으로 밝혀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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