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10돌]「넥타이 부대」의 회고

  • 입력 1997년 6월 13일 20시 29분


6월항쟁이 시민항쟁으로 「격상」한데는 이른바 「넥타이부대」로 불리는 젊은 직장인들의 동참이 큰 기여를 했다. 넥타이부대 주역중 한명인 郭泰元(곽태원·41)전국사무금융노련 부위원장. 그는 『현대해상화재보험 노조 사무국장 시절 참여한 6월항쟁은 민주화 축제였다』고 회고했다. 넥타이부대의 첫 작품은 곽씨를 포함한 제2금융권 노조대표 20여명이 주도한 4.13 호헌조치 철회요구 성명발표였다. 명동성당 농성장에는 넥타이부대의 농성지지 성명과 격려문이 수없이 나붙었다. 당시 명동 일대의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성당앞에서 즉석모금을 하고 농성장에서 대학생들과 시국토론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곽씨는 『새벽에 집에 들어갔다가 다음날 출근하면 졸음이 밀려와 힘들었지만 역사의 현장에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퇴근 후 다시 거리로 나섰다』고 말했다. 처음에 학생 시위대 뒤편에서 구호나 따라 외치고 박수나 치던 넥타이부대는 나중에는 직접 시위에 참가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는 『6월항쟁을 계기로 높아진 직장민주화에 대한 열기는 6.29선언 이후 노조결성과 노동법 개정투쟁으로 계승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뭉치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국민의 가슴에 새겨졌다는 것만으로도 6월항쟁은 성공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무금융노련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곽씨는 민주노총 창립멤버로 지금도 6월항쟁의 연장선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부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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