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해상을 통해 귀순한 김영진 유송일씨 가족 8명은 지난해 3월 두만강을 통해 중국으로 건너간 뒤 10개월여 동안 연변과 북경 등을 오가며 망명의 기회를 노려온 것으로 밝혀졌다.
김영진씨와 유송일씨 일가족은 지난해 3월 각각 두만강을 건넌뒤 연길과 북경등을 전전하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오다 현지인의 도움으로 지난 22일 중국의 한 부두에서 남한행 탈출선을 타고 목숨을 건 항해끝에 자유의 품에 안겼다.
▼김영진씨 가족▼
김씨 가족이 `식량을 구하러 간다'며 고향인 평남 문덕군을 떠난 것은 지난해 3월 19일.기차를 타고 꼬박 이틀을 달린 끝에 이들은 21일 외할머니댁인 함북 무산에 도착했다.
김씨는 무산에 도착한지 이틀만인 23일 가족들과 함께 두만강 구경을 갔다가 돌아와 `남조선으로 가야 공부도 마음놓고 할 수 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며 탈북결심을 처음 밝혔다.
아버지의 탈북계획을 듣고 아들 해룡군(17)과 해광군(15)은 `친애하는 김정일수령님의 품을 떠날 수는 없다'며 반대했으며 김씨의 부인 김찬옥씨(46)은 밤늦게까지 두 아들을 어렵게 설득했다.
이들은 이날밤 칠흑같은 어둠을 이용해 숨을 죽이며 두만강변에 접근,보초병의 움직임을 살핀뒤 다음날인 24일 새벽 3시30분께 흰 포대기를 뒤집어쓰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땅에 무사히 도착했다.
야산에서 추위에 떨고 있던 김씨 가족은 나무를 하러 올라온 사람을 만나 그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뒤 조선족에게 차비를 얻어 인근 마을에 도착했고 26일에는 차비가 떨어져 밤 10시께 다른 마을에 도착했으며 10여집을 돌며 재워줄 것을 애원한 끝에 또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걸어서 연길시내에 도착한 김씨 가족은 갖고 있던 북한돈 3천원을 중국돈 90원으로 바꿔 식비에 보태기도 했으며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도보행군을 한끝에4월1일 연길 외곽의 한 마을에서 조선족의 도움으로 상당기간을 머물렀다.
김씨 부부는 4월과 5월 두차례 북경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가기도 했으나 `중국과의 외교문제때문에 망명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과 함께 문전박대를 당했다.
한국대사관의 거부로 이들은 한때 현지에 정착하는 방법을 찾기도 했으며 날품팔이와 식당일로 근근이 연명하면서 거처를 다섯번이나 옮겨다닌 끝에 `박사장'이란 사람의 도움으로 지난 1월21일 탈출선을 타기 위해 중국의 한 부두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유송일씨 일가족을 처음 만나 운명을 같이 했다.
▼유송일씨 가족▼
유씨가 어머니 이의순씨(65)와 부인 이영순씨(39)아들 청송군(15),딸 청옥양(13)청금양(11)등을 이끌고 함북 청진을 출발한 것은 지난해 3월 4일로 김씨 가족보다는 보름가량 일찍 고향을 떠났다.
유씨는 탈북과정에서 어머니 이씨를 병으로 잃었고 부인과도 헤어지는 비운을 맛봐야 했다.
북한군 46사단에서 소좌로 예편한 유씨는 군복을 입고 제대증명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안전원들의 감시의 눈길을 피해 무사히 남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씨 가족과 마찬가지로 유씨는 가족들을 이끌로 경비 허점을 틈타 두만강을 건너는데 성공했느나 이들의 진짜 고생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심양에서 조선족 동포들의 집을 전전하며 숙식을 해결하던 유씨는 북경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통하면 쉽게 한국에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대사관을 두차례 찾아갔으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앞날이 막막해진 유씨는 북경 한국대사관을 두번째 방문했을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부인 이씨와 심하게 다퉜으며 이씨는 이 길로 헤어져 나타나지 않았다.
또 잔병이 많던 어머니 이씨 마저 은신과 유랑이 반복되는 힘든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6월23일 숨을 거둬 동포들의 도움으로 화장했다.
고립무원이던 유씨에게 지난 7일 한 조선족 동포가 찾아와 `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는 말을 전해준 것은 마치 복음과도 같았다.
중국 공안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남루한 옷을 새옷으로 갈아입은 유씨 가족은 중국의 한 부두에 도착했으며 21일 같은 처지의 김씨 가족과 함께 목숨을 건 항해를 감행했다.
강풍과 파도가 일렁이는 서해를 항해한끝에 다음날 오후 인천 서남방 75마일 격렬비열도 해상에서 한국 해경정에 의해 구조되면서 이들의 10개월여에 걸친 대탈출극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