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사「인질71시간」체험기]『빵하나로 5명이 끼니』

  • 입력 1996년 12월 22일 20시 19분


【리마〓李圭敏특파원】 지난 20일 밤(현지 시간) 석방된 李元永(이원영)대사는 억류생활에 대한 질문에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만 하루가 지나서야 당시 생활을 공개했다. 다음은 이대사가 밝힌 71시간의 인질생활 체험기. 『일본대사관저에는 약간의 비상식량이 있었지만 게릴라들이 상황의 장기화에 대비해 음식공급을 줄이는 바람에 처음에는 고통스러웠다. 아침 한끼로 두명앞에 식빵 한조각이 나오다가 다음에는 주먹만한 빵 한 덩어리를 다섯명이 나눠먹도록 했다. 식량사정은 적십자사가 음식을 공급하면서 좋아졌는데 이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작은 방에 20명씩 수용되는 바람에 누워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잠을 자야만 했던 것이다. 인질중에 유명한 심리학자가 한명 같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상황의 장기화에 대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체스 등의 놀이를 통해 시간관념을 잃도록 해야 하며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물이 부족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전염병에 대비해 음식을 손으로 다루지 말라는 등 위기극복방안을 교육해 많은 사람들이 이에 따르기도 했다. 이 사람의 제의를 받아들여 게릴라들은 외부에서 음식공급을 할 때 완전히 조리된 것만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범인들 중에는 두 명의 여자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붉은 복면을 했다가 나중에 복면을 벗었을 때 보니 매우 앳된 모습이었다. 이들은 모두 검은색 전투복 차림에 많은 양의 실탄과 수류탄을 갖고 있었지만 인질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많은 교육을 받은 듯 위계질서가 있어 보였고 행동이 절제된 모습이었다. 처음 이틀동안은 너무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라 이것이 현실인지 자꾸 의문이 가기도 했지만 사흘째부터는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각오를 하기 시작했다. 공무원으로서 실제적 위기상황에 처해 죽음이 다가온다면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희망적인 생각과 절망이 매순간 교차했다. 죽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하다 죽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냐고 자위했다. 그래서 극한상황에 대비해 기독교인으로서 차분하게 정신적 정리를 해 왔다. 풀려나오던 날은 하루종일 앉아서 기도만 했으며 여기서 죽게 되면 영혼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를 기원했고 다행히 구출되면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거짓말처럼 나올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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