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동포 「사기」에 운다/피해실태…현지 긴급취재]

입력 1996-11-28 20:09수정 2009-09-2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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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해 가정과 가족과 몸이 망가져 통한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코리안 드림」이 깨진 것에 울고 믿었던 동족에게 배신을 당한 데 대해 더욱 서럽게 울고 있다. 중국 동북3성의 현지 취재를 통해 이들의 피해사례와 현지에 팽배한 반한 감정, 그들의 요구사항 등을 시리즈로 싣는다.〉 「中 동북3성 피해실태」 조선족들이 타국 하늘아래에서 강인한 의지와 단결로 일궜던 삶의 터전인 연변. 한민족끼리 오순도순 살던 그 땅은 이제 「눈물과 절망의 땅」이 돼가고 있다. 전쟁이나 지진이 난 것이 아니다. 「고국에서 온 동포」여서 무조건 반기고 철석같이 믿었던 한국인들의 사기극에 걸려 이들의 삶은 갈기갈기 찢겨졌다. 기자가 찾은 연변은 한국인에게 사기피해를 당한 조선족동포들의 비탄과 한숨소리가 짓누르고 있었다. 『한국에서 오셨다고요. 한국인이라면 이제 치가 떨립니다』 길림성 연길시에 있는 연변 제2인민병원에 입원중인 시아버지의 병상을 지키고 있는 朴銀姬(박은희)씨는 손을 내저었다. 『한국사람을 동포라고 해서 따뜻한 마음에 도와줬더니 우리 가정을 풍비박산 내버렸다』고 말했다. 박씨 가족은 지난 95년 1월 중국여행을 하던 한국인 이정석씨가 갑자기 병에 걸리자 이씨를 병원에 입원시켜 정성을 다해 치료해줬다. 친척들한테 빚을 얻어 치료비 3만원(元)까지 부담했다. 보답을 바란 것도 아니고 그냥 동포이기에 베푼 일이었지만 완쾌한 이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저에게 두번째 생명을 주었다. 이 은혜에 꼭 보답하겠다』고 말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몇달 뒤 다시 들어온 이씨는 『한국에 취업시켜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사람들을 모아달라고 했다. 출국 수속비가 필요하다는 말에 박씨 가족은 친척 10명으로부터 1인당 1천5백달러씩 걷어 이씨에게 주었다. 그러나 돈을 받아간 이씨는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박씨가 연락을 할 때마다 『초청서류는 아직 컴퓨터에 있다』 『서류를 보충해야 한다』는 등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가 마침내 소식을 끊어버렸다. 박씨는 『시아버지는 충격으로 쓰러져 벌써 몇달째 반 식물인간 상태로 병석에 누워계시고 피해자들이 결혼한 자식들을 찾아가 물매를 놓고 괴롭히는 바람에 줄줄이 이혼해야 했다』면서 『시어머니는 오늘도 빚꾼들이 몰려와 폭행을 할까봐 겁이 나서 집 뒷문 창을 열어놓고 문 밖에 신발을 갖다 놓고 있다』고 울먹였다.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수도인 연길시에서는 박씨와 같은 「비극」을 겪고 있는 가정을 찾는 것은 이제 너무 쉽고 흔한 일이 돼 버렸다. 인구 30만명인 이 도시에서는 세 집에 한 집 꼴로 한국인으로부터 사기피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변방국제무역공사 책임자인 鄭吉成(정길성)씨는 『지난 1년간 마음고생으로 나이를 열살은 더 먹어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오성환씨(36·부산 중구 중앙동)를 만난 것은 작년 10월. 오씨는 『한국에 동포들을 취업시켜 주겠다며 사람들을 모아달라』고 했다. 『한국정부내 중요한 인물들과 친하고 서울 중소기업체 회장도 잘 알고 있다』는 오씨의 말을 믿고 65명으로부터 5천원씩 걷어 전달했다. 한달 월급이 3백∼4백원인 이들에게 5천원은 10년은 고생해야 모을 수 있는 큰 돈. 「한국에 가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에 들떠 몇몇은 직장마저 그만뒀다. 그러나 그후 오씨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정씨는 수백차례 국제전화와 팩스로 독촉을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이자만 눈덩이처럼 쌓여갔다. 피해자들은 요즘 매일같이 회사에 모여 울면서 정씨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졸라대고 있다. 길림성 연길시 흥안향 향장 金昌范(김창범)씨는 『평화롭던 마을이 한국 동포 때문에 망해버렸다』고 개탄했다. 94년 11월 흥안향마을은 「경남 딸기영농조합」과 자매결연을 했다. 『해마다 마을 사람 1백명을 연수생으로 초청하겠다』는 말에 온 마을 사람들은 꿈에 부풀었다. 미화 12만달러를 모아 한국으로 보냈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같은 민족으로서 동포를 잡아먹을 수가 있느냐』는 김향장의 표정은 잃어버린 돈보다도 동포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가득했다. 백모씨(32·여)는 현지 한국인 사업가 행세를 한 金義根(김의근·50·경기 고양시 주엽2동)씨와 결혼까지 했다가 여자로서의 인생을 망쳐버린 경우. 김씨는 94년 7월부터 12월말까지 고향방문단 및 연수생 명목으로 48명을 모집한다고 속여 69억9천5백만원을 가로채 한국으로 도망가버렸다. 백씨는 김씨가 소식을 끊자 피해자들에게 온갖 수모를 당했다. 김치 지하저장고 속에 하루동안 갇혀 있다가 친척들에 의해 구출되기도 한 그는 몇차례나 극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백씨는 『남편이 이혼을 해주지 않아 결혼도 못하고 있다』며 『나는 이제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라며 하소연했다. 조선족 사회에 몰아친 「코리안 드림」은 지식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길림성 훈춘사립백산대학 연길분교는 한국에 이 대학 분교를 설립한다는 말에 속아 羅鳳彩(나봉채·48·서울 동작구 사당동)씨에게 속아 교과서 인쇄비 13만원을 날려버렸다. 『조선족들은 남을 의심할 줄 몰라요. 돈을 줄 때도 「동포간에 무슨 영수증이냐」며 증서 한장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한국사람들이 조선족 심성까지 망쳐놨어요』 이 대학 崔台鎬(최태호)교수의 개탄이다. 朴英今(박영금·연길시)씨는 한국인을 믿고 중간에서 중개인 역할을 했다가 피해자들로부터 한 패로 몰리는 바람에 집안의 물건을 다 뺏기고 집에서 살 수 없는 형편. 박씨는 『중국의 다른 민족들이 조선족을 상대로 사기친 적이 없었다』며 『우리 동포들은 중국의 그 어떤 민족보다 더 잘살아보려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 동포의 가슴에 칼을 들이댈 수 있느냐』고 흥분했다. <황의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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