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한미훈련 취소’ 요구에 담긴 뜻…‘우린 더 잃을 게 없다’?

  • 뉴스1
  • 입력 2021년 8월 3일 14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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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남북한 당국 간 통신연락선 복구 이후 추가 조치로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함에 따라 그 배경이 주목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단 북한의 이번 요구엔 “향후 남북관계 개선을 빌미로 한미동맹 관계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동시에 북한의 ‘훈련 중단’ 요구가 수용되지 않더라도 당장 북한으로선 “잃을 게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지난 1일 남북 통신선 복원을 “중요한 반전”이라고 지칭하며 “지금 같은 시기에 (한미) 군사연습은 북남관계의 앞길을 더 흐리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부부장은 “희망이냐 절망이냐. 선택은 우리가 하지 않는다”며 한미훈련 실시 여부에 따른 향후 남북관계에 대한 책임을 우리 측에 떠넘기기도 했다.

북한의 요구대로 올 후반기 한미훈련이 취소된다면 북한은 일단 그 자체로서 남북, 나아가 북미 대화를 할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된다.

북미 양측은 올 1월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 대화 재개 문제를 놓고 ‘기싸움’을 이어온 상황. 미국 측은 북한을 상대로 “조건 없이 대화하자”고 제안한 반면, 북한 측은 반대로 대화 재개엔 조건, 즉 ‘미국 측의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8월 한미훈련이 취소된다면 향후 북미대화 및 남북대화의 주도권은 결과적으로 북한에 넘어가게 된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북한 스스로도 ‘바이든 행정부와의 기싸움에서 이겼다’고 판단, 이를 대내외적으로 선전하며 내부 결속에 이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북한은 과거에도 미국과의 대화 또는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우리 정부를 흔들어 ‘성과’를 내려고 한 적이 있다. 남북 통신선 복구에 이은 북한의 한미훈련 중단 요구 또한 이런 공식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단 얘기다.

그러나 이 같은 셈법은 역설적으로 한미 양국이 북한의 훈련 중단 요구를 들어주지 않더라도 “북한 입장에선 당장 크게 잃을 게 없음”을 방증해주는 것이란 평가도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대북제재 장기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국경 봉쇄 조치, 그리고 지난해 수해와 올해 폭염 등으로 현재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도 지난 6월 주재한 당 전원회의에서 이례적으로 식량난을 인정했다.

김 총비서는 지난달 27일 열린 제68주년 전승절(한국전쟁(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 기념 전국노병대회 연설에선 코로나19 유행 상황을 지칭한 듯, “보건 위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즉, Δ북한 내 상황이 이미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고, Δ이를 해결하기 위한 외부의 원조가 절실하다면 북한의 한미훈련 중단 요구는 그들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수사(修辭)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남북 통신선 복원 자체가 이 같은 내부의 어려움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최근 ‘혈맹’인 중국과의 관계 강화을 재차 도모하고 있는 것 또한 추후 식량 등의 대북지원을 염두에 둔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러나 일각에선 북한의 요구대로 한미훈련이 취소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북한도 그만큼의 ‘반대급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훈련 취소는 어쨌든 “미국이 먼저 북한에 ‘인센티브’를 쥐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도 비핵화 문제 등과 관련해 “좀 더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란 얘기다.

게다가 한미훈련 취소에 이어 대북 식량지원, 제재 완화 등까지 이어질 경우 북한의 대응 선택지는 한층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만일 한미훈련이 취소됐는데도 남북 및 북미 간 대화 재개에 응하지 않은 채 ‘고립’ 행보를 이어간다면 김 총비서가 추구해온 ‘정상국가 지도자’로서의 변신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도 남북 통신선 복원에 이은 북한의 한미훈련 취소 요구 의도와 배경 등을 면밀히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는 김 부부장 담화 배경과 관련해 (북한의) 여러 태도를 보면서 종합적으로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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