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 심기 보좌’ 한창인 국회 보좌진들[고성호 기자의 다이내믹 여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8일 11시 43분


코멘트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회 의원회관의 한 사무실.

한 보좌관이 의원 집무실 문틈에 귀를 대고 있었다. 모시는 의원이 전화통화를 끝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전화통화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한 그는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일정 조정 등 보고할 거리가 많았지만 자칫 의원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문조차 두드리지 않았다.

국회 의원회관 전경.
국회 의원회관 전경.


요즘 국회 의원회관에선 ‘금배지 심기 보좌’가 화두다. 21대 국회가 임기를 시작한 지 두 달 남짓 밖에 지나지 않아 의원들과 코드 맞추기가 한창이라는 뜻이다. 특히 이번 주에는 각 정부 부처의 업무 보고가 진행되면서 긴장감마저 감돈다. 21대 국회 첫 상임위원회에 데뷔전을 치르는 의원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한 초선 의원의 보좌관은 “이번 주 잡은 개인 약속을 모두 취소했다”며 “퇴근도 제때 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국회의원 집무실이 있는 의원회관 복도.
국회의원 집무실이 있는 의원회관 복도.


의원회관에는 2700명 안팎의 보좌진이 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300명의 입법 활동 등을 돕기 위해 각 의원마다 9명을 둘 수 있다. 이들은 각기 다양한 이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의원들의 업무를 지원한다. 예전에는 정치인을 꿈꾸는 예비 정치인들이 주로 보좌관을 했다면 최근에는 사회의 다원화 전문화 추세에 따라 분야별 전문가들이 적잖다. 이들 대부분은 해당 분야의 석박사 학위를 소지했거나 실무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국회 의원실 문화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의원과 보좌진이 여전히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관계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국회의원의 비서는 “의원과 보좌진의 관계는 크게 동반자이거나 수직관계”라며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반반’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보좌관도 “의원이 마음만 먹으면 보좌진은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주종관계가 된다”고 덧붙였다.

보좌진들이 일하고 있는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보좌진들이 일하고 있는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국회 보좌진은 의원이 국회 사무총장에게 면직요청서를 제출하면 별도의 절차 없이 면직 처리된다. 신분 자체는 별정직 공무원인데도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고, 의원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보좌관은 “보좌진은 의원이 고용한 사람”이라며 “현실적으로 하루살이 인생, 파리 목숨과 같다”고 말했다.

의원의 요청에 따라 면직되는 등 일자리를 잃은 보좌관 수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18대 국회는 1143명이었지만, 19대 국회에선 1300명, 20대에선 국회 1634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30명이 실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 의원은 “의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보좌관들을 선호한다”며 “보좌관들과 맞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보좌관 업무의 안정성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국회도 이와 관련해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둔 상태다. 핵심은 의원이 보좌진을 면직하려면 30일 전에는 예고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보좌진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고 재취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국회의원 집무실.
국회의원 집무실.


의원들도 수평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한 의원은 “보좌진의 월급은 국민 세금으로 주는 것”이라며 “다른 의원들도 수평적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 보좌관들이 수직관계로 생각할까봐 염려도 된다”며 “수직적 관계가 되면 의원실 조직이 살아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의원 집무실에 마련된 미니 냉장고.
의원 집무실에 마련된 미니 냉장고.

일부 의원들은 아예 과일이나 커피 심부름을 금지시키고 있다. 여성 보좌진뿐만 아니라 남성 보좌진까지 모두 방문객 대접에 소중한 시간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다. 실제 한 의원은 방문객들이 직접 음료수를 골라 먹을 수 있는 미니 냉장고를 자신의 집무실에 마련해놨다.

고성호기자 sung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