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패권 청산”… 문재인도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 대선판 흔들기

  • 동아일보

[빨라진 대선시계]반기문 귀국… 여야와 ‘세불리기 파워게임’ 시작

《 12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으로 대선 지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반 전 총장을 대선판의 중심에 세우려는 구심력과 대선판 밖으로 밀어내려는 원심력의 대충돌이 본격화된 것이다. 현재 대선 일정은 불투명하다. 다만 정치권에선 2월 말∼3월 초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과 4월 말∼5월 초 조기 대선을 상정하고 대선 레이스에 돌입했다. 10년간 국내 무대에서 비켜서 있던 반 전 총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석 달 남짓일 수도 있다. 반 전 총장으로선 자신의 인생을 건 마지막 도전의 주사위가 던져졌다. 》
 

공항철도 타고 서울역으로… 지지자들에 손들어 화답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가운데)과 부인 유순택 여사(반 전 총장 왼쪽)가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환영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공항철도 타고 서울역으로… 지지자들에 손들어 화답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가운데)과 부인 유순택 여사(반 전 총장 왼쪽)가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환영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12일 귀국 메시지는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패권과 기득권 세력 청산이다. 이어 정권 교체가 아닌 정치 교체 선언이다. 마지막으로 광장의 여망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기존 정치권을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 자신만이 광장의 여망에 부응하는 정치 교체 세력임을 강조한 것이다. 야권의 ‘정권 연장 프레임’에 대한 반 전 총장의 역공이다.

○ 정치 교체 들고 나온 반기문의 딜레마

 반 전 총장이 ‘정치 교체’를 들고 나온 건 현재 대선 구도를 흔들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러 신년 여론조사에서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게 뒤졌다. 탄핵 정국에서 분출된 정권 교체 열망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문 전 대표가 “반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정권 교체가 아니지 않느냐”고 직격탄을 날린 것도 이런 민심을 반영한 공세였다.

 이에 반 전 총장은 문 전 대표를 포함한 기존 정치권을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정권을 누가 잡느냐가 그렇게 중요하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사람이 아닌 문제 해결 능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여기엔 딜레마가 있다. 정치 세력이 없는 반 전 총장은 기존 정치권과의 연대가 필수다. 정치권에선 국민의당과의 ‘뉴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비롯해 개헌을 매개로 바른정당과 김종인 전 대표 등 민주당 내 비문(비문재인) 진영까지 결합하는 ‘반(反)문재인 연대’ 등이 거론된다. 민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대표는 충남도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반 전 총장이 조급한 마음에 구시대 정치세력과 결합해 집권 전략에만 몰입하면 국민의 지탄을 받을 것”이라며 “새로운 개혁 세력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정치에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면 만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이 어떤 세력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정치 교체 선언은 퇴색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홀로 대선 레이스를 완주하기도 어렵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정치를 잘 모르니 국민과 대화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겠다”고 했다.

○ 반기문 언급 피한 문재인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토불부도수(土佛不渡水) 목불부도화(木佛不渡火)”라고 했다. 흙으로 빚은 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하고, 나무로 만든 부처는 불을 건너지 못한다는 뜻이다. 반 전 총장이 앞으로 야권의 공세와 민심의 출렁임이란 물과 불을 건너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력을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중구난방인 지지 세력 교통정리도 난제다. 정치권은 설 연휴 전까지 ‘민생 탐방’에 나설 반 전 총장의 행보와 메시지를 평가한 뒤 정파별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에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이 뛰어올라 문 전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면 반 전 총장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가 형성될 수 있다. 반면 지지율 정체 내지 하락 국면에 들어서면 반 전 총장이 특정 정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 전 총장의 귀국 화두인 ‘정치 교체’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의 슬로건이었다. 반 전 총장이 보수가 아닌 중도를 표방하면서 안 전 대표와의 지지층 경합도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안 전 대표가 반 전 총장과 결합할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독자노선을 걸을지가 대선 정국의 ‘마지막 퍼즐’이란 관측도 있다. 문 전 대표와의 양자대결을 주장해온 안 전 대표는 “반 전 총장이 재벌을 위한 정치를 할지,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할지,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며 모호함을 지적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반 전 총장의 귀국 소감을 묻자 “질문을 받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문 전 대표는 반 전 총장의 민생 탐방에 맞서 전국적으로 북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또 일자리 및 남북관계와 관련한 공약 발표도 예고했다. 반 전 총장을 의식하지 않고 ‘준비된 후보’로 굳히기에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앞으로 2주간이 1라운드다.

이재명 egija@donga.com·강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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