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신공항 무산에 대해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이 어제 오전 “김해공항 확장은 사실상 신공항으로, 동남권 신공항이 김해공항 신공항이 되는 것”이라며 “(대선) 공약 파기가 아니라 어려운 문제이지만 약속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연구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항공 안전과 경제성 등을 종합 판단해 김해공항 확장을 최적의 대안으로 발표한 데 대해서는 본보 역시 ‘합리적 결정’으로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약속을 지켰다”는 청와대 발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철석같이 믿었을 영남 주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손톱만큼도 배려하지 않은 면피성 궤변이다.
박 대통령도 어제 오후 신공항 결정 과정을 언급하며 “이렇게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 대해 관련 당사자들의 합의와 전문기관의 의견 존중, 정부의 지원이 잘 조화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갈등 전문가의 논평을 듣는 듯하다. 이해관계와 가치가 엇갈린 공공 갈등의 경우 합리적 토론과 숙고(熟考)를 통한 합의, 그리고 승복으로 풀어내느냐가 민주주의 수준을 말해준다. 그러나 신공항 문제는 박 대통령 자신이 촉발시킨 사안이다. 국민과 공감하지 못하는 이런 발언으로 영남권의 들끓는 민심과 정치권의 반발을 가라앉힐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이 나온 바로 다음 날인 2011년 3월 31일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 유감스럽다”며 “(향후 대선 공약으로) 동남권 신공항은 계속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음 날인 4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공약을 지킬 수 없어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까지 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부산 시민 여러분께서 바라는 신공항 반드시 건설할 것”이라고 외쳤던 박 대통령이 이제 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김해 신공항’ 운운하는 것은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갈등관리 리더십’이다.
박 대통령에게서 배운 듯 서병수 부산시장은 민자(民資)를 유치해서라도 가덕도에 공항을 짓겠다고 나섰다. 대구 유일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의원은 대구 최고(最古)의 신문이 1면을 백지로 내면서 항변할 만큼 국민이 농락당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 혈세로 생색내기에 재미 들인 정치인들의 비용 개념을 무시한 포퓰리즘 발상이다. ADPi의 결론을 검증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행태도 사회적 불신만 증폭시킬 뿐이다. 지금도 고추 말리는 데나 쓰는 지방 공항이 많은 현실을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묻고 싶다.
이명박 정부 때 나왔던 김해공항 확장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진작 받아들였더라면 7년간의 국력 낭비와 갈등 비용은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신기루 같은 신공항 공약으로 날을 지새우지 않으려면 대통령부터 정치권, 단체장들까지 모두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 때마다 부도가 뻔한 공약의 남발을 방지하고 국책사업의 표류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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