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 프리킥]반기문이 뜨는 진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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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논설위원
허문명 논설위원
새해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차기 대통령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2위 후보와의 격차는 더 커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는 생물”이라 했지만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의외의 인물이 유력했던 후보들을 제치고 당선된 적이 없다는 점을 곱씹어 보면 반기문의 부상 이유를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본다. 본인이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제2의 고건’ ‘영혼 없는 관료’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사람’ 같은 부정적 여론이 있고 ‘성완종 사건’으로 도덕성에까지 흠집 난 그의 존재감이 커져만 가는 이유는 뭘까?

대통령은 누굴 밀고 싶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교 안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는 데 있다고 본다. 한 게 별로 없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로 탄탄하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본보를 포함한 대부분 신년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 평가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항목이 ‘외교 안보 통일’ 분야였다.

따지고 보면 가부장제 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 여성 지도자가 안보와 외교 능력에 국민적 신뢰를 주지 못했다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박 대통령이 10·26 직후 아버지 서거 소식을 들은 뒤의 첫마디가 “전방은요?”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안보 본능’을 잘 표현해 주는 대목이다.

돌이켜 보면 미중 대결이 격화되는 와중에 외교 안보적 좌표를 잡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를 포함해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진전을 이뤄냈다. 후유증이 있긴 하지만 위안부 문제도 일단 매듭지었다.

최근 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대표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 온 정치권 인사 몇과 이야기를 하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차기 대통령감’이 화제에 올랐다. 한 참석자가 반기문을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내년 대선에서 자신의 기반인 영남과 반기문의 기반인 충청 표를 합치면 승산이 있다고 계산할 법하다. 게다가 원래 외교 안보 통일 분야를 중시했고 3년간 국정 경험을 하면서 외교 감각과 국제적 인맥을 갖춘 이가 한국의 미래에 필요하다고 느낄 것이다.”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고문도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야당 지도자가 수권 정당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려면 외교 안보 통일의 임무 수행 능력을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 김대중(DJ) 대통령도 용공으로 낙인찍혀 평생 고생하다 보수 정치인인 김종필(JP)과도 손잡고 ‘뉴 DJ’플랜도 만드는 등 갖은 애를 써서 대통령이 된 것 아닌가. 한국의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을 갖고 한미동맹을 기초로 북한을 다뤄야 하는 자리다.” 한국 정치의 본질을 꿰뚫는 예리한 통찰이다.

野에 軍통수권 맡길 수 있나

6일 세계를 경악하게 한 북한의 도발에서도 드러났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안보가 경제보다 우선이다. 경제는 사람만 잘 써도 풀어갈 수 있지만 안보와 외교는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 야권 후보들은 국민들에게 군 통수권을 잘 행사할 수 있고 통일 외교를 여권 후보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음을 보여야 이길 수 있다. 행정학을 전공한 오연천 전 서울대 총장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한국의 대통령은 외교 안보 통일 임무가 전체 업무 중 70% 이상을 차지한다. 그 비중은 더 높아갈 것이다.”

‘반기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뜨는 진짜 이유, ‘반기문 현상’에 담겨있는 메시지를 여야 정치인들은 주목했으면 한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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