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기고/한상진]18대 대선 평가에서 배워라

  • 동아일보

야당 바뀌어야 한다<중>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4·29 재·보선 참패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부닥쳤다. 당의 같은 실수가 반복되면서 최고위원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도 휘청거린다. 누가 무엇에,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18대 대선의 눈으로 해답을 내놓기 위해 당의 고질적인 병을 되돌아보겠다.

18대 대선 평가 과정에서 내가 발견했던 당의 치명적인 결함은 정당의 생명인 책임윤리가 고갈되었다는 점이었다. 책임을 져야 할 고위 인사들이 실패의 원인을 자신 안이 아니라 밖에서 찾는 경향이 너무 심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좋은 보기다. 책임의 소재를 안에서 명확히 밝히는 대신, 모호한 집단적 책임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상황을 수습하려는 태도가 당의 체질이자 습속으로 굳어진 상태였다. 더 나아가 자신의 과오를 밝히는 적극적 책임윤리의 실천을 정치적 ‘자살’로 보고 상대의 책임을 묻는 행위를 정치적 ‘살해’로 보는 살벌하고 척박한 풍토가 당에 만연했다.

바로 이 지점, 즉 정치적 책임을 죽고 사는 문제로 오인하는 풍토 안에 새정치연합의 깊은 병이 있고 착각이 있다. 자신의 과오 인정과 극복에 앞장서는 적극적 책임윤리 수행은 깊은 감동을 주고 당을 새롭게 결속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살인의 눈으로 보면 누구나 필사적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이런 사례들을 나는 대선 평가 과정에서 많이 보았다. 책임을 진다 하더라도 맡은 직책을 그만두는 소극적 책임이 전부다. 물러났으면 됐지 더 할 일이 무엇이냐는 반응이다.

소극적 책임에는 과오나 단견에 대한 진솔한 소명이 없다. 겉보기에는 물러나 자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반대의 경우도 많다. 문재인 대표의 자서전이 좋은 보기다. 총선과 대선에서 당과 자신은 어려운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당내 계파 갈등 때문에 이 성공이 인정받기는커녕 실패한 것으로 매도당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책임윤리가 꽃필 여지가 없다.

내가 발견한 새정치연합의 또 다른 병은 당내 자유 공론을 기피하는 것이다. 대선 평가 때 나는 당내 토론을 거쳐 가자고 했다. 객관적 자료로 책임의 소재를 밝히기 위해 민주당의 주요 구성원,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던 유권자 그리고 국민 전체에 대한 설문조사 등에 근거하여 대선 패배의 원인과 대책을 열심히 다양하게 분석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토론할 여지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내가 만신창이가 되어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를 거부했다. 당이 분열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 뒤 같은 얘기가 반복되었다. 김한길 대표에게 대선 평가보고서를 증정하면서 나는 제발 이것을 책장 속에 가두지 말고 공론화의 소재로 삼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그 역시 보고서를 가뒀다. 박영선 비대위원장 때, 당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런 책임윤리도 공론화도 없었다. 그 뒤를 이은 문희상 비대위는 쉬쉬하며 갈등의 관리자 역할만을 수행했다. 그러는 사이 정당의 생명인 책임윤리는 파탄의 경지에 도달했고 자유 공론은 정제되지 못한 인신공격으로 대체되었다. 이렇게 병적으로 심화되고 곪아 터진 당의 체질이 이제 문재인 대표의 앞길을 가로막는 컴컴한 넝쿨로 퍼졌다.

잠시 되돌아보면, 2014년 봄 안철수 의원이 당의 공동대표로 영입될 때 나는 문재인 의원에게 살신성인의 자세로 이른바 ‘친노’의 부정적 프레임을 거둬 내기 위해서라도 정계를 은퇴하고 안철수 체제의 성공을 위해 백의종군하기를 청했다. 나의 판단으로는 그때가 여러모로 문 의원의 미래를 비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그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대권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당 대표에 조기 등극했고 오늘날 최대 난관에 직면했다.

그렇다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18대 대선의 교훈에서 보자면 그 길은 하나밖에 없다. 대표직을 사퇴한다고 당의 체질이 바꾸어질 가능성은 없다. 문 대표가 해야 할 일은 그가 책임져야 할 실패와 과오를 소상히 진솔하게 밝히고 극복 방안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 내외의 신망이 높은 인사가 중심에 서서 자유롭고 비판적인 공론장을 활짝 여는 것이다. 분열될 위기의 조직이 이런 소통 쇄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예가 적지 않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다. 또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한다. 이 과업을 수행할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없다면 문 대표는 지체 없이 물러나야 한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4·29 재·보선#새정치민주연합#18대 대선#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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