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타개하려면 입구론? 출구론? 비상구론? 분명한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6일 15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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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새벽(한국 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열렸다. 어느 정상회담이든 의미가 있긴 하지만, 이 회담은 내용과 형식, 시점에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하다. 특히 형식과 시점이 그렇다.

형식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초청해서 열었다는 것이다. 회담 장소가 미국대사관이라는 점이 그를 상징한다. 한미와 미일 동맹,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미국 입장에서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문제로 갈등을 빚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한국과 일본이 자체적으로 정상회담을 열 만한 분위기도 안 되자, 미국이 개입해 '강제로' 만나게 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북핵'을 의제로 삼겠다는 데 거부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시점은 더 의미 있다. 한국과 일본은 2012년 5월 정상회담을 한 뒤 22개월 이상 양자 정상회담을 열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지 1년 7개월, 박 대통령이나 아베 총리 모두 취임 후 상대방을 만나지 못했다. 극히 비정상적이다. 지난해 열기로 되어 있던 한중일 정상회담도 중국과 한국이 별로 내키지 않아 무산됐다. 그렇다고 전망이 밝지도 않다. 이런 시점에서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비록 미국의 초청 형식이긴 하지만, 대통령과 총리가 된지 처음으로 대면하게 됐다.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한국말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한 것은 나름대로 이 회담에 거는 기대를 나타낸다.

일부에서는 이번 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데 대해 실망감을 표시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그랬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다. 정상회담을 하기 전에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한일 양자의 과거사 문제는 제외됐을 가능성이 높다. 양국의 과거사 문제는 두 나라가 별도 회담에서 풀어나갈 사안이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런 것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3자회담을 통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길 바랐다는 게 미국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만나는 데 의의가 있다는 말이, 한일 양자 관계에서 이번 회담만큼 잘 들어맞는 회담도 없을 듯하다.

그렇다고 내용이 전혀 없던 회담도 아니었다. 한미일 3국이 북핵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를 추진키로 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일부에서는 이 회의가 '조속한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으로도 풀이했으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6자회담 자체가 쓸모없다는 기존의 분위기를 바꿨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핵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였다. 미국은 소위 '입구론'에 서 있다. 북한이 핵물질과 핵실험을 포기하고, 미사일 발사를 중지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6자회담에 응하겠다는 것이고, 중국은 일단 6자 회담을 열면 중국 방식대로 영향력을 행사해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이른바 '출구론'에 서 있다. 미중 정상회담 뒤에 열린 한미일 3국 회담에서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를 추진키로 한 것은 어느 의미에선 중국의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6자회담을 강조한 중국의 주장을 완전히 내치기가 어려웠는데, 한미일 3국이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에 합의함으로써 부담을 던 측면도 있다.

3국 정상회담이 열리는 바로 그 시각(26일 오전 2시 35분과 42분)에 북한이 평양 북방 숙천이라는 곳에서 노동미사일로 보이는 탄도미사일 2기를 동해 쪽으로 발사한 것은 의도가 명백하다. 3국이 뭐라고 하든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특히 노동미사일이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발사체는 650km를 날아간 것으로 보인다고 국방부는 발표했다. 노동미사일은 최대 사거리가 1200km에 달해 일본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간다. 핵탄두도 탑재할 수 있다. 최근 수십 발씩 쏘아올린 단거리 미사일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3국 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반발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동이나 대포동 등 사거리가 긴 미사일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매우 민감하다. 아베 총리는 외국에 나와 있으면서도 곧바로 미국 한국 등 관련국과 연계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것, 자국의 항공기와 선박 등의 안전 확인을 철저히 할 것, 국민에게 신속 적확하게 정보를 제공할 것 등을 내각에 지시했다. 일본 언론의 반응도 3국 정상회담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 보도했다. 북한의 무력 위협에 대해서는 늘 일본이 한국보다 민감하다는 것을 이번에도 여실히 보여줬다.

일본 언론이 3국 정상회담을 보도한 태도는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3국이 공조하기로 했다는 사실과 한일 역사문제는 언급이 없었다는 점 등을 공통적으로 보도했다. 다만,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회담 후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과 처음으로 회담을 하고, 새삼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공통의 과제가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직접 만나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이번 회담을 향후, 미래지향적인 일한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제1보로 삼고 싶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아베 총리가 냉각된 한일관계를 타개하기 위해 양자회담에 의욕을 표시했다거나, 양자회담을 어떻게 열지 아베 총리의 수완이 평가받을 것이라고 일본 언론은 해설했다.

한국은 어떤가. 아베 총리의 입장과 다른 듯하면서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어느 대통령보다도 일본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 특히 외국에서 정상회담을 하거나 연설을 할 경우,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 일본에 대한 비판과 올바른 역사인식을 주문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이번에도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과의 인터뷰에서 군위안부 문제를 언급했다. 이런 태도에 대해 일본은 매우 비판적이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의 입장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박 대통령도 시간이 흐를수록 '선택'에 몰릴 수밖에 없다.

앞서 얘기했듯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론은 '입구론'과 '출구론'이 있는데,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한일 정상이 처음으로 대면한 것은 '입구론'도 '출구론도 아닌 '비상구론적'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비상구는 경우에 따라 입구도 될 수 있고, 출구도 될 수 있다. 입구로 쓸지, 출구로 쓸지는 양국 정상의 태도에 달려 있다.

하나 분명한 것은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변화가 없이는 박 대통령이 손을 내밀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말부터 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계를 경색시키는 최대의 현안으로 부각됐다. 아베 총리가 (미국의 압박도 작용했겠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일본 정부가 관여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1993년의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얼마 전 밝힌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의 압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 대통령도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총리 주변에서 이와는 다른 말이 나오는 바람에 아베의 진정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한일 두 나라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베 총리의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하고, 주변에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단속하며, 양국 국장급 정도의 협의체를 만들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에 나서는 것이 선결과제다. 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국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에 대단히 힘든 과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손을 대지 않으면 다른 것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공이 언뜻 아베 총리 쪽으로 넘어가 있는 듯하지만,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 이후에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도 주목을 받는 시점이다.

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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