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외자유치 위해 평양 인근까지 개방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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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구 투자제안서 살펴보니

‘(북한) 국내에서 가장 큰 국제무역항인 남포항까지의 거리가 10km밖에 되지 않고 평양국제비행장까지 60km여서 국내외 운송과 인원, 자금의 유출입에 대단히 유리하다. 풍부한 대동강수원이 있어 용수 보장에 유리하다. 용지가 옛 염전지역이라 부착물의 철거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

27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북한의 개발구 투자제안서 중 남포시 와우도수출가공구에 대한 설명의 일부다. 와우도구역의 지리적인 특성과 개발구로서의 장점, 추진 가능성, 전력과 용수 같은 주변의 인프라 상황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한 북한전문가는 “북한이 수도인 평양 인근에 개발구를 조성하고 평양과의 인접성을 내세워 외자 유치에 나선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A4크기 용지 26장 분량의 이 투자제안서는 13개 개발구별로 나눠 보면 2장씩의 분량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제안서가 기존의 다른 경제개발 계획서보다 구체적이고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외자유치의 성사 가능성과는 별개로 북한이 해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규모는 줄이고 목표는 낮춘 실험

이번 투자제안서의 가장 큰 특징은 13개 개발구 모두를 대상으로 외국기업들의 투자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나선과 황금평·위화도,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특구 등 북한 땅의 끝자락 4곳만 제한적으로 개방하던 이른바 ‘모기장식’ 투자와 달리 이번에는 북한의 전 구역을 외자유치 대상으로 삼아 개방하겠다는 의미다. 북한이 과거보다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외자 유치에 나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북한 기업과 해외 투자자 사이의 합영기업 형태와 함께 해외 투자자들이 단독으로 기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곳도 상당수다.

지역 단위의 개발구이다 보니 개성공단이나 나선특구 같은 기존의 특구보다 규모가 작은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개발구별 용지 규모는 대부분 2∼3km², 목표치로 설정한 외자유치 규모는 대부분 1억 달러 안팎이다.

지역별 특성에 맞춰 농업과 공업, 관광, 수출가공 등으로 개발 분야를 나눠놓은 점도 눈에 띈다. 또 상하수도와 전력, 철도 등 개발구의 조성에 필요한 인프라가 이미 상당 부분 갖춰졌거나 구축이 가능한 곳이 지정돼 있다. 함경북도 어랑농업개발구의 경우 ‘어랑비행장이 현대화되면 외국인 및 화물 수송이 편리하고 함흥∼청진 간 1급 도로와 직접 연결돼 있으며 8km 떨어진 어랑역을 통해 동서해지구로 연결된 철길을 활용할 수 있다’는 식의 분석이 담겨 있다. 어랑비행장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민영화를 특별 지시했다는 군사 비행장 3곳 중 하나다.

북한은 투자제안서에서 개발구로 지정하려는 지역의 위치를 비교적 상세하게 명시했다. 북청농업개발구의 경우 ‘함경남도 북청군 문동리, 부동리, 종산리의 일부 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지역별로 개발 가능한 용지에 대한 검토 및 선정 작업이 이미 끝났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좀 달라 보이기는 하는데… 성공 가능성은 미지수”

북한대학원대의 양문수 교수는 “북한이 외자 유치를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 보인다”며 “이런 식으로 투자 리스크를 줄이고 실질적으로 진행 가능한 부분에 집중한 소규모 개발구를 추진하는 것이라면 어느 단계까지는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고 진행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제안서에 언급돼 있지 않은 투자의 안전성 보장, 분쟁 시 해결방법, 근로자의 임금 등 구체적인 사안은 5월 제정된 경제개발구법을 통해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양 교수는 설명했다. 대북 경협분야 전문가인 유완영 ㈜유니코텍코리아 회장은 “북한이 ‘1국가 2체제’로 전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까지 내놨다. 정치적으로는 김정은 중심의 사회주의를 유지하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적인 시스템을 도입해 초보적 단계의 개혁·개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핵과 경제개발의 병진노선을 천명한 이후 관광과 오락, 유통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교체된 상급(장관급) 인물 27명 중 85%인 23명이 경제 관련 인사였다. 북한은 특히 올해 2월 3차 핵실험 이후 핵개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경제 분야를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그러나 북한이 외자 유치에 성공할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하드웨어와 인프라를 갖춘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이를 이행할 능력과 준비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외국기업들이 호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국 정부가 투자를 권유하는 개성공단에조차 입주 희망기업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과거에도 몇 차례 경제개혁을 추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며 “이번 구상이 과거보다 실행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만 해외 투자자를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3800만 달러를 투자했던 중국의 시양(西洋)그룹은 지난해 9월 현지의 인프라 부족과 북한 당국의 임금 인상 및 토지 사용료 등 무리한 요구, 일관성 없는 태도 등에 시달리다 결국 철수했다. 시양그룹은 철수 당시 “(북한에서의 기업활동은) 악몽이었다”고 밝혔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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