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朴 ‘절반의 승리’… 이념-세대로 쪼개진 대한민국 통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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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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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대<1>의미와 과제

광화문서 축하 행사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하는 젊은이들이 19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당선 축하 행사에서 율동을 하며 기뻐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광화문서 축하 행사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하는 젊은이들이 19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당선 축하 행사에서 율동을 하며 기뻐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국민은 19일 18대 대통령선거에서 ‘보수 정권 5년 더’를 허락했다. 2012년 겨울, 대한민국이 처한 국내외적 경제위기와 안보위기 상황에서 진보 정권 10년의 이념 과잉 시대, 편 가르기 시대로 되돌아가기보다는 ‘미래로의 전진’과 ‘안정 속의 개혁’에 좀 더 힘을 실어준 것이다. 5년 전, ‘열매 없는 이념’에 지친 민심을 바탕으로 531만 표 차의 압도적 승리를 거뒀던 이명박 정권. 시작은 화려했으나 이내 시들었다. 압승의 의미를 착각하고 정권 초반부터 오만했던 탓이다. 몇몇 실세들이 10년 만에 맛본 권력의 꽃향기에 취해 놀아났기 때문이다. 왼쪽으로 치우치고 뒤틀린 국가를 ‘정상화’시키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현 정부가 한 귀로 흘려보내는 사이 민생은 피폐해졌다. 》
그럼에도 보수우파-진보좌파 간 유례없는 일대일 대회전(大會戰)에서 국민은 국가 최고지도자로 보수우파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선택했다. 불과 5년 만에 ‘이념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1%도 안 되는 종북 세력이 국정을 뒤흔드는 상황을 만들 수는 없지 않느냐는, 하는 짓이 영 마뜩지는 않지만 보수 세력에게 한 번 더 위기의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경영할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민의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절반의 승리다. 박 대통령 당선인은 50%를 갓 넘긴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반대편의 절반 가까이는 박 후보를 찍지 않았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정면승부와 더불어 2030과 5060의 국가운영 패러다임을 둘러싼 유례없는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7 대 3’ ‘3 대 7’의 구도로 격렬히 맞선 적은 없었다. 역대 대선에서 ‘독립변수’로 작용했던 지역 갈등이 ‘종속변수’로 밀려나고 세대갈등이 독립변수의 자리를 대체한 선거로 18대 대선은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 팍팍해진 삶에 지쳐


이번 대선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가로로는 이념으로 갈라지고 세로로는 세대로 두 동강이 나 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념 갈등과 세대 갈등이 복잡하게 뒤얽힌 ‘십자형 민의’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불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보수건 진보건, 2030이건 5060이건, 또 그 사이에 낀 40대건 할 것 없이 국민 대부분은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에 고달파하며 각자 살길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처럼 첨예하게 맞서 있다는 것. 이게 ‘52 대 48’의 표심으로 농축돼 발현된 것이라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런 점에서 통합이야말로 당선인이 1차로 신경 써야 할 과제다. 자신을 찍지 않은 48% 국민의 상실감을 따뜻하게 보듬지 않고서는 그가 말한 100% 국민행복과 국민대통합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승자독식’으로는 국가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대 정권의 반복된 실패 사례는 보여준다. 반대 세력들이 국정운영을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나설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게 역사적 경험이다. 승리자로서 진정성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패배자와의 통합 노력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반대편에 섰던 진보 유권자, 2030 유권자들은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정치권 인사들은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선 후 새 정부 출범 이전 야당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국가지도자연석회의’를 갖겠다는 박 후보의 공약은 의미가 크다.

박 당선인은 ‘대탕평 인사’도 약속했지만, 이 또한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5년 단임제하에서 적진의 인사가 ‘변절자’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박 당선인이 내민 손을 선뜻 잡을 리 만무하다는 점에서다. 몇 자리 ‘떡고물’ 나눠주는 식의 시혜적 ‘지역안배’ 자세로는 국민통합은 요원하다.

박 당선인의 핵심 슬로건인 ‘70% 중산층 시대’가 5년 집권 내에 달성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예상키 어렵다. 작금의 경제위기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 못지않게 나쁘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이기 때문이다. 지난 5년에 이어 향후 5년에도 3% 수준의 저성장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 속에 “18대 대통령은 가장 불행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경제민주화-성장의 조화를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도 박 당선인이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다. 재계와 노동계가 윈윈의 양 날개를 펼치도록 재계와 경제계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설득 리더십’은 온전히 박 당선인의 몫일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강봉균 전 민주통합당 의원은 최근 한 포럼에서 “10년간 저성장을 계속하면 경제의 선순환구조가 파괴된다. 빨리 달리는 자전거는 잘 넘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최악의 저성장 위기 상황에서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은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전직 야당 의원의 지적은 박 당선인이 되새겨 볼 대목이다. 또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국가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아주 중요한 덕목이나, 선거 때 경쟁적으로 내세웠던 포퓰리즘 공약의 전반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G2(미국과 중국)의 대결, 일본의 극우경화, 북한 김정은 체제의 불확실성, 장거리 로켓 발사에 따른 한반도 주변국의 군비 경쟁 우려 등 첫 여성 군 통수권자 앞에는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현 정부 5년 내내 이어져온 꽉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은 난제다. 보수 기조를 확고히 견지하되 남남갈등의 요소를 가급적 최소화하며 중도의 지지를 얻고 합리적 진보도 공감할 수 있는 대북정책의 큰 그림이 나오기를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남북관계 돌파구 찾아야

사실 이번 대선 기간 내내 보수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대선에서 신승하긴 했지만 떠들썩하게 축배를 들 분위기는 아니다. ‘박근혜 개인기’로 진보의 공세를 막아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자기혁신 노력을 게을리 하는 ‘낡은 보수’에겐 더이상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국회의원 감축을 포함한 각종 정치쇄신안을 새누리당이 앞장서 강력히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검찰 등 무소불위로 여겨져 온 권력기관 개혁도 임기 초반 타이밍을 놓치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역대 정권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조언이다. 권력 분산을 포함한 개헌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잔치는 끝났다”며 정치쇄신을 미적대며 입을 씻는 순간 제2, 제3의 안철수가 등장해 정치권의 기득권 세력을 강타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박 당선인은 요즘 트렌드인 ‘수평형 리더십’ ‘개방형 리더십’ ‘소통형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보수 내에서도 박 당선인에게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위적 리더십’이 연상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잖다. 경제 민주화 못지않은 ‘권력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청와대는 ‘권위적인’ 구조와 분위기 탓에 대통령과 참모의 심적 간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자유롭게 참모들의 ‘쓴소리’가 오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도 많다.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친박 발호’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근혜 그룹’의 몇몇 인사가 실세 운운하며 권력에 탐닉하기 시작하고 대선 때 남발했다는 선대위 임명장을 들고 설쳐대는 사람들의 부패 연루 사건이 속속 터지는 순간, ‘박근혜 시대’는 임기 초반부터 레임덕을 맞을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현 정부도 비슷한 실책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마음’ 잊지말길

전문가들 사이에서 올해 20년 만에 총선과 같은 해 실시된 18대 대선은 1987년 못지않은 정초(定礎)선거로 인식돼 왔다. 향후 오랫동안 계속될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고 사회의 기본틀을 잡는, 주춧돌을 놓는 선거라는 의미에서다. 박 당선인은 이를 ‘시대교체’라고 규정했다. 그, 두 개의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연거푸 승리했다. 오만은 금물이다. ‘여대야소’로 임기를 거의 같이하며 5년 더 국정을 운영하게 된 박 당선인에겐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을 거듭하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발전모델을 제시하고, 경제를 옥죄는 낡은 정치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할 막중한 책임이 놓여 있다.

이번 대선에서 대거 투표장을 찾은 3000만 유권자들의 엄숙한 행렬은 서로 다른 가치와 지향을 가진 두 개의 큰 ‘물결’이었다. 상생의 정치로 이 물결을 융합해 국가적 에너지로 승화시키고 향후 10년, 20년의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라는 게 이번 대선 과정의 저변에 흐르는 민의다.

20일 ‘차기 대통령으로서의 첫 새벽’을 맞게 될 박 당선인은 공식 일정에 앞서 홀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상념에 잠길 것이다. 흉탄에 잃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리며 잠시 감회에 젖기도 하고,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사명감을 느끼며 깊은 심호흡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2개월 뒤 박 당선인은 33년여 만에 청와대로 다시 들어간다. ‘박정희의 딸’이 아닌 ‘18대 대통령 박근혜’로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민생대통령이 되겠다”는 그의 다짐은 국민의 뇌리에 박혀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박근혜#대선#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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