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2012/정책으로 선택을]일자리 공약 ‘액션 플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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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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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의 화두가 일자리 문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총선 전후 복지 확대와 대기업 규제를 소리 높여 외치던 각 당의 대선주자가 청년실업 등 고용 문제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각 후보 캠프 간 논쟁의 핵심이 ‘경제민주화’에서 일자리로 상당 부분 넘어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대선후보는 일자리를 복지와 함께 가장 중요한 시대 과제로 꼽았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일자리 혁명’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세웠다.

하지만 각 당의 일자리 공약은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각론(各論) 실종’, ‘깜깜이 선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총론과 방향, 선언적 메시지만 나열돼 있을 뿐 이를 위한 정책 집행수단이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선을 약 90일 앞둔 지금은 ‘말의 성찬(盛饌)’보다는 알맹이와 실효성이 있는 방법론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의 일자리에 대한 기본 구상은 대동소이하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 후보는 모두 일자리를 ‘정부 정책의 중심’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대선과 달리 “1년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 개’ 창출하겠다”는 수치 목표를 아직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접근 방식은 후보별로 차이가 있다. 박 후보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증가”를 모토로 내세웠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필요한 노동력은 줄어든다는 기존의 통념과는 다소 다른 생각이다.

박 후보는 최근 본보 인터뷰에서 ‘스마트 뉴딜’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정보기술(IT)과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청년들이 원하는 미래형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 “좋은 일자리 많이” 한목소리… 비용 부담 해법은 깜깜 ▼

박 후보 측은 “한국의 강점인 IT 기술을 농·어업 등 산업 전반에 적용해 신성장동력을 육성하고 벤처기업 활성화에도 신경을 쓰겠다”고 밝혔다. 기존 전통산업의 일자리 창출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벤처에 투자하는 ‘에인절(angel) 투자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기업들의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개발을 장려한다는 복안도 함께 공개했다.

문 후보는 세 후보 중 가장 먼저 일자리 문제를 치고 나갔다. 그러나 정책의 수단은 박 후보와 달리 산업 지원보다는 법과 제도, 정부조직을 개편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문 후보는 우선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일자리위원회, 청년일자리특별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노동시간을 근로기준법대로 주 40시간으로 제한하고 정리해고의 요건도 엄격히 하는 등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도 초점을 맞췄다.

눈에 띄는 것은 상시적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일자리의 전반적인 ‘질’을 높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출마 선언을 한 안 후보는 현재 한국 경제의 구조 자체를 바꿈으로써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다는 중장기적인 청사진을 갖고 있다. 현재의 경제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어 성장과 복지, 일자리를 선순환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게 안 후보 측 설명이다.

박선숙 선거총괄본부장은 다른 후보들을 겨냥하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없다. 무엇보다 경제구조를 먼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아직 구체적인 방법론이 미진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 “일자리 해묵은 과제에 입장 밝혀야”

일부 전문가는 각 후보의 이런 고용정책 방향에 대해 “대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 또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지 못한 채 “좋은 건 다 하겠다”고 나서는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경제·노동 분야 학자들이 일자리의 양대 지표로 삼는 고용의 ‘질’과 ‘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것이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후보들이 근로자의 임금이나 고용안정성도 높이고, 또 그런 양질의 일자리도 늘린다고 하는데 둘 중 어느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며 “이런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정부 재정을 들일 것인지, 기업 비용으로 할 것인지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후보들의 공약은 노동시장의 안정성만 중시하고 유연성은 얘기하지 않고 있다”며 “노동시장 유연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일자리 창출 자체가 안 되는데도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로서는 쉽게 꺼내기 어려운 말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번 대선을 청년 일자리의 수준을 높이는, 가장 난도(難度) 높은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깊은 고민이 담긴 공약도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 정부는 ‘일자리의 양’ 중심의 정책을 폈지만 이번에는 일자리의 질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며 “청년층이 자신들의 고학력에 맞는 일자리를 못 찾는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제대로 된 공약이 나올 것”이라고 주문했다.

역대 정부나 정치권에서 감히 나서서 해결하지 못했던 한국 고용시장의 난제(難題)들에 대해 후보들이 확실한 견해를 밝혀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가들이 가장 강조하는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고용창출 효과 면에서 제조업은 서비스업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져 있는 만큼, 이 규제의 고리를 풀기 전에 일자리를 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억 원을 투자할 때 늘어나는 취업자 수(취업유발계수)는 제조업이 9.3명이지만 서비스업은 16.6명에 이른다. 그러나 교육 의료 관광 등 서비스업의 규제는 기득권 세력과 이익단체들의 반발에 막혀 이번 정부에서도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청년실업 문제에 가려 있는 고령자 취업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서도 각 후보의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3, 4년이 지나면 베이비부머의 은퇴 문제가 거의 최고의 현안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고령층이나 은퇴자의 일자리 문제는 청년 일자리에 묻혀 있다”며 “고령화 추세를 봤을 때 이 문제가 오히려 더 시급할 수 있다”라고도 말했다.

정년 연장 문제에 대한 공론화도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중장기전략보고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에 따라 정년제의 폐지를 단계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고 제언했다. 정년 연장은 고령화 추세에 따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의제지만 자칫 청년고용을 줄여 젊은층의 표심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쉽게 이 문제를 거론하지 못하고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대선후보#일자리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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