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기 결국 사퇴]‘두루미-까마귀論’ 언급하며 작심한듯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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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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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기 사퇴회견 현장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가 1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별관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감사원장에 내정된 지 12일 만에 사퇴한 정 내정자는 이날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가 1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별관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감사원장에 내정된 지 12일 만에 사퇴한 정 내정자는 이날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는 12일 오전 사퇴 기자회견에서 야당과 언론이 제기한 의혹을 하나하나 반박한 뒤 자신을 내친 여당에 대해서도 섭섭한 마음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국회 인사청문회조차 거치지 못한 채 물러나는 상황에서 언론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결백을 알리려는 모습이었다. 약 30분간 이어진 회견에서 그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이날 오후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퇴임식에서는 눈물을 보였다.

○ “허위주장 기정사실화에 개탄”

정 내정자가 이날 발표한 사퇴문에는 ‘악의적’ ‘유린’ ‘개탄’ ‘비애’ ‘참담’ 등 억울함과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어휘가 다수 담겼다. 27년간 검사로 재직하며 말을 자제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정 내정자가 이번 사태로 큰 충격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이날 오전 붉은 넥타이 차림으로 집을 나선 정 내정자가 기자회견장에는 검은 넥타이로 바꿔 매고 나타난 것도 불편한 심경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먼저 야당에 비난을 쏟아냈다. 야당은 정 내정자가 2007년 대검찰청 차장 재직 당시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 사건 등과 관련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도와줬고, 2008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시절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그는 “검찰에서 특정 대선후보에게 도움을 준 것처럼 왜곡하거나, 민정수석 재직 시 민간인 불법사찰에 관련된 것처럼 허위주장을 일삼고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데 개탄을 금치 못했다”고 반박했다. 특히 민간인 사찰 사건에 대해서는 일문일답에서도 “그 사건이 지금 와서 볼 때는 크지만 당시에는 그런 사례가(각종 보고 건수가) 엄청 많았다”며 “민정수석 자리가 한가하게 사소한 사건을 보고받을 자리가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대검 차장에서 물러난 뒤 법무법인 ‘바른’에서 7개월간 약 7억 원을 받은 것이 ‘전관예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30여 년 법조 경력을 가진 변호사와 이제 막 변호사로 출발하는 사람의 급여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200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합류한 뒤 법무법인 급여가 3배가량 늘었다는 지적에는 급여명세표까지 배포하면서 “퇴직 때 실적에 따른 상여금을 받았을 뿐 인수위에 가기 전과 (뒤에 급여) 차이가 없다“고 적극 해명했다.

○ “청문절차 봉쇄는 법치주의에 오점”

정 내정자는 여당에도 날을 세웠다. 그는 “공직후보자는 청문회라는 공론의 장을 통해 (각종 의혹에) 답변하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기에 기다려왔다”며 “그런데 여당까지 불문곡직하고 사퇴를 촉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이 지명한 헌법기관인 감사원장 내정자에게 청문회에 설 기회조차 박탈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며 “청문 절차를 정치행위로 봉쇄한 일련의 과정은 살아있는 법을 정치로 폐지한 것으로 법치주의에 커다란 오점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끝으로 그는 ‘장자’에 나오는 “두루미는 날마다 미역 감지 않아도 새하얗고, 까마귀는 날마다 먹칠하지 않아도 새까맣다(鵠不日浴而白 烏不日黔而黑·곡불일욕이백 오불일검이흑)”는 구절을 인용해 자신의 억울한 심정과 정치권의 정치공세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정 내정자의 발언은 지금까지 국무총리, 국무위원에서 낙마한 후보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강한 톤이었다. 지난해 8·8 개각 당시 중도 사퇴했던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경우 각종 의혹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모든 것이 내 부덕의 소치”라고 몸을 낮췄다.

정 내정자는 사무실을 나서면서 “홀가분하다. 집착을 떨쳐버리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또 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충분히 말할 기회가 있었지만 정 내정자의 경우 청문회를 하기도 전에 자진사퇴를 강요받는 모양새가 된 만큼 서운함의 정도가 훨씬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사퇴문은 전적으로 정 내정자가 작성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정 내정자는 “오늘 새벽에 (사퇴문을) 썼다”며 “사퇴는 스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 내정자는 이날 오후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그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정부법무공단 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공직에 적합하지 않은 처신을 한 적도 없고 제기된 의혹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떠나게 돼 안타깝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울먹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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