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 소득세 감세에 ‘야단법석’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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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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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도시 공기업 1조 감세는 일사천리?

“정치권이 감세(減稅) 논의의 ‘블랙홀’에 빠져 다른 주머니가 새는 줄 모른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한 의원은 최근 정치권의 감세 논란을 두고 18일 이같이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최상위 소득층의 감면이라는 ‘꼬리’에 불과한 논란에 빠져든 사이 국회에서는 공기업에 대규모 면세 특혜를 주는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큰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현재 국회 재정위 법안심사소위는 혁신도시 이전 대상 157개 공공기관에 최소 6000억 원에서 1조 원이 훨씬 넘는 양도소득세(법인세)를 면제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심사하고 있다.

○ 법 통과되면 수조 원 세 감면 예상

이 개정안의 핵심은 공공기관이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의 기존 건물과 땅을 팔고 지방 혁신도시로 옮겨갈 때 해당 공공기관에 부동산 양도세를 100% 전액 감면해준다는 것이다. 국회 재정위와 지식경제위에 따르면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157개 혁신도시 이전대상 공공기관 중 20개 공공기관만 해도 5983억 원의 양도세를 면제받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같은 추정치를 157개 공공기관 전체로 확대할 경우 양도세 면제 규모가 1조 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국회는 분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전력은 지방 혁신도시로 본사를 옮겨가기 위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본사 건물을 팔 때 약 1조5000억 원의 수익을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익에 대한 양도세는 3100억 원이 발생하지만 만약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전액 면제되는 혜택을 보게 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마찬가지다. 본사 건물을 매각할 때 2500억 원의 예상수익에 부과될 양도세는 600억 원에 이르지만 개정안 처리 이후 탕감 받을 것으로 국회 관계자는 전망했다.

혁신도시 이전 대상 공공기관들엔 이 개정안 외에도 이미 여러 법인세 감면 혜택 조치가 예정돼 있다. 조세특례제한법과 2007년 제정된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에 따라 매년 납부하는 법인세를 7년간 100%, 그 후 3년간 50% 감면받게 돼 있다. 재정위 관계자는 “이미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공기업에 상당한 세제 혜택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양도세 전액 감면이라는 이중 혜택을 줄 경우 국가재정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 혁신도시와 관련된 의원들이 발의


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민주당 정범구 최규식 백원우 최인기 박주선 김재윤 이미경 전현희 이춘석 최규성 의원,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 등이다. 상당수 의원은 혁신도시의 혜택을 보는 지방에 지역구가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발의 의원 가운데 민주당 소속이 특히 많은 것과 관련해 “민주당의 ‘부자 감세’ 주장은 자기 지역구 이익 앞엔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이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정범구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공공기관들은 수도권에 있는 자산을 팔고 나서 지방으로 이전해야 하는데 이전 비용 충당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특히 지방 이전으로 인해 각종 직원복지 분야의 투자가 증가해 자산 운용에 도움을 주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 한나라 지도부 갑론을박 ▼
나경원 “감세논쟁 철학이 없어” vs 정두언 “논쟁해야 정책정당”


한나라당 지도부는 18일 감세 정책의 수정 여부와 야당의 ‘부자 감세’ 비판에 대한 대응 방식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를 만나 당의 감세 논쟁에 불편한 심경을 내비친 데 이어 논란이 당 지도부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런 분위기가 22일 열릴 당 정책 의원총회에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한나라당 나경원 최고위원은 18일 박근혜 전 대표와 안 대표 등이 주도하는 당의 감세 정책 수정 움직임에 제동을 걸면서 비판의 물꼬를 텄다.

나 최고위원은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감세 정책은 모든 납세자의 세금을 줄이는 것인데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으로 매도당하고 있다”며 “감세 논쟁은 야당이 만든 ‘부자감세 프레임’에 갇힌, 철학과 원칙도 없는 논의”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유혹에 넘어가 무책임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여당은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살피고 소처럼 걷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세율 인하 적용 시기가 2012년이므로 지금 당장 야당의 ‘부자 감세’ 비판에 맞대응해 감세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는 게 나 최고위원의 생각이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고흥길 정책위의장도 “나 최고위원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가세했다.

이에 안 대표는 “나도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는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나 최고위원의 발언을 인용해 비판을 우회적으로 반박했다.

또 서병수 최고위원은 “감세 논의는 감세를 통해 소비 투자를 촉진시키고 경제를 활성화시켜 복지를 이룬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에 절대 위배되지 않는다”며 “이런 논쟁이 바람직하지만 너무 길게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말 감세 철회를 주장하며 논쟁을 촉발했던 정두언 최고위원도 “이런 논쟁은 건전하고 생산적”이라며 “요즘 한나라당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정책 정당”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정 최고위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내 개혁 성향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 주최 토론회에 참석해 강만수 대통령경제특보와 백용호 대통령정책실장이 감세 철회에 반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 지도부는 감세 정책 수정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과열될 것을 우려해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당 의총에선 의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발언을 하지 말도록 요청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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