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군마저 ‘朴의 입’ 원망… 사면초가 박지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3일 03시 00분


■ 거짓말로 드러난 ‘훼방꾼 발언’ 파문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오른쪽)가 2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가 지켜보는 가운데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은 볼 필요가 없다. 달을 봐야지”라며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논란이 된 자신의 ‘평화 훼방꾼’ 발언에 대해 사과할 뜻이 없음을 우회
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오른쪽)가 2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가 지켜보는 가운데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은 볼 필요가 없다. 달을 봐야지”라며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논란이 된 자신의 ‘평화 훼방꾼’ 발언에 대해 사과할 뜻이 없음을 우회 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부주석이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이라고 발언했다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 내용을 중국 정부가 부인한 가운데 22일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박 원내대표에게 “응분의 책임을 지라”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민주당에서도 박 원내대표의 적극적 우군(友軍)은 나서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는 이날도 자신의 발언을 정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 한나라당 이틀째 공세, 자유선진당도 가세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박 원내대표는 국제적 망신을 초래하고 국민과 대통령, 우리나라와 중국을 우롱했다. 자신의 거짓말을 인정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민주당의 조치를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배은희 대변인은 “거짓말을 인정하지 않는 뻔뻔한 태도는 도덕성 빈곤의 극치”라며 사과 및 거취 표명을 요구했다.

여권은 일단 주말에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고 공세를 어디까지 밀고 갈지 판단할 계획이다. 안 대표가 24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원내대표의 태도 변화 등을 보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정리된 여권의 요구 사항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22일 오전에 열린 한나라당 국정감사 점검 회의에서는 박 원내대표에 대한 언급이 일절 나오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와 민주당이 이미 궁지에 몰렸으므로 일단 한 템포 멈추고 반응을 지켜보는 게 낫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가 이날 오전에도 사과 대신 여전히 정부를 비판하자 공격의 포문을 다시 열었다.

한편 자유선진당 대변인인 박선영 의원은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 방송에서 “박 원내대표는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제1야당 원내대표답게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며 원내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박 의원은 “의원직(사퇴)은 본인이 판단할 문제지만 원내대표로서는 물러나야 할 중차대한 문제”라며 “자신의 거짓말이 드러났음에도 마치 중국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는 제1야당의 원내대표로서 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 박지원,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을 보나”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손학규 대표 등 지도부 전원이 참석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은 볼 필요가 없다. 달을 봐야지”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켜 보였다. 전날 중국 정부가 자신의 발언을 부인하자 서면 발표문을 통해 “국익을 위한다는 차원에서 그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며 한발 빼는 듯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다만 ‘손가락은 볼 필요 없다’는 말은 ‘훼방꾼’ 등 일부 표현이 실재하지 않았음을 간접 시인한 것으로도 해석됐다.

박 원내대표에 앞서 발언에 나선 손학규 대표는 “본질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느냐 후퇴시키느냐, 또 중국 지도자들 눈에 어떻게 비치고 있느냐란 것”이라며 “본질을 외면한 채 특정 표현이 있었으냐 없었느냐에 매달리는 이명박 정부가 밖에 성숙하게 비치겠느냐”고 말했다. 이인영 최고위원도 “청와대와 여권의 대응은 한마디로 한심하다”고 가세했다. 다만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 등은 아예 이번 사건과 관련한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회의 이후 손 대표는 자신을 예방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중국이 과연 대한민국의 외교를 균형 있는 외교라고 보겠느냐”며 공세를 이어나갔다. 이에 김 장관은 “동의하지 않는다”며 “천안함 사태를 겪으며 모든 것을 속 터놓고 얘기하는 관계가 됐다”고 답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선 박 원내대표를 원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태의 파장이 대외적으로까지 번진 만큼 최소한 박 원내대표가 사과라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중진 의원은 “원내사령탑으로 무슨 발언을 한들 영이 서겠느냐”며 “박 원내대표가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했다.

한 3선 의원은 “주말까지 박 원내대표의 태도를 지켜보겠지만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입장을 발표할 수 있다”고 했다. 한 초선 의원은 국감 도중 기자들과 만나 “자신감이 넘치더니 결국 사고를 쳤다”며 “자신의 실수에 당이 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서둘러 봉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동영상=시진핑 관련 말은 사실이라고 거듭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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