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에 밀리지 않으려니 ‘세종시 집안 단속’
소신 밝혔던 친박들, 朴 말 한마디에 ‘움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사진)가 세종시 문제를 놓고 ‘계파정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당 대표 시절 계파정치 타파에 앞장 선 지도자로 평가받았던 박 전 대표지만 요즘 세종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히 계파 단속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 가운데 세종시 원안 수정에 긍정적이었던 의원들도 소신을 모두 접고 당내 토론조차 거부하고 있다. 이를 놓고 친이계는 “박 전 대표가 계파정치에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박 전 대표는 친박의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이 세종시 수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다음 날 ‘원안+α’ 발언으로 김 의원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고 정부의 수정안 발표 직전엔 “당론으로 채택돼도 반대한다”며 쐐기를 박았다. 지난달엔 친박계 이계진 의원이 ‘무기명 투표’를 제안하자 곧바로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 된다”며 이를 일축했다.
‘원안+α’ 발언 당일 상임위 회의실에서 친이(친이명박) 의원들에게 “박 전 대표가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던 서울의 한 친박계 재선 의원은 요즘 ‘원칙과 신뢰’의 신봉자로 바뀌었다. ‘당당한 소신’을 밝혔다간 박 전 대표에게 정면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의식한 행보로 보인다.
물론 친박계는 여전히 “박 전 대표는 계파정치를 하지 않는 분”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예전의 박 전 대표는 계파정치에 찌든 기성 정치지도자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2004년 당 대표에 취임하고 맞은 17대 총선 때는 최병렬 전임 대표 시절 구성된 공천심사위원회의 공천권 행사 과정에 간섭하지 않았고, 차기 대선 후보 경선의 틀을 결정하는 2005년 혁신위원회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가깝던 홍준표 의원에게 위원장을 맡겼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이 본격화하기 전까지 조직을 가동하지 않았고 그 결과 비주류였던 이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계파정치는 당의 정상적인 의사결정과 국민 중심의 의회정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란 소신을 실천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따져보면 요즘의 ‘박근혜식 계파정치’는 3김(金) 시대와는 성격이 다른 측면이 있다. 보스와 가신그룹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던 과거와 달리 박 전 대표는 비주류로서 주류에 효과적으로 저항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계파의 힘을 빌리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도적으로 계파 관리를 한 게 아니라 정치적 역학구도가 낳은 ‘결과적 계파정치’라는 해석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친박 의원 누구와도 세종시 문제를 깊이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 의원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측근들에게 구체적인 반대 이유를 밝힌 적도 없다.
한 친박계 인사는 31일 “동반자 약속을 어기고 모든 권력을 친이계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의) 라이벌이 될 수도 있는 정운찬 국무총리를 앞세워 ‘미래 권력’의 싹까지 자르려는 이 대통령에 맞서려면 박 전 대표로서도 계파의 힘을 모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친박 내부에서는 세종시 수정 논란을 미래 권력의 본질을 건드리는 첨예한 이슈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세종시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토록 스스로 경계하던 ‘계파의 수장’ 지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 박 전 대표의 딜레마가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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