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예결위 단독처리 → 본회의 3차례 연기 → 野항의속 “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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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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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마지막날 예산 전쟁

[예결위 기습통과] 與, 회의장 변경 전격통보… 野“불법 날치기 처리”
[본회의 여야대치] 김형오 - 이강래 삿대질 공방속 반대토론 없이 표결
[24분만에 상황끝] 與- 친박연대 표결 참여… 민주, 몸싸움 없이 퇴장

2010년도 예산안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여야는 막판까지 대치하며 힘겨루기를 했다. 국회는 당초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됐던 본회의를 세 차례나 미룬 끝에 오후 8시에 열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표결 당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국회의장석 앞 단상을 점거하고 있었다. 민주당은 “날치기며 국회법을 어겼다”며 법적 대응에 나설 예정이어서 당분간 정국 경색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여야 막판까지 본회의장 대치

이날 오후 7시 55분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 80여 명은 ‘대운하 예산 반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본회의장 의장석 앞 발언대 주변을 둘러쌌다. 그러면서 의장석에 있는 김형오 의장을 향해 “날치기 주범 김형오는 사퇴하라”, “예산안 원천무효”를 외쳤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가 김 의장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자 김 의장은 “어디 손가락질을 하고 그래요. 당신들 말이야, 정신을 차리세요. 민주당 의원들은 부끄럽지 않으세요. 민주라고 하면서 이런 부끄러운 행태를 하고 있어”라고 목청을 높였다.

김 의장은 오후 8시 15분 개의 선언을 하고 한나라당의 2010년도 예산안 수정안을 상정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반대토론을 신청했지만 민주당 민노당 의원들이 발언대를 비켜주지 않자 박 의원은 “날치기 하듯 토론을 하고 싶지 않다. 발언대에서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럼에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 실랑이가 벌어지자 김 의장은 “토론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어 종결하겠다”고 선언한 뒤 곧바로 표결을 실시했다. 결국 오후 8시 39분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해 재석 177명, 찬성 174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새해 예산안이 통과됐다.

야당 의원들은 곧바로 “날치기다”, “원천무효”라고 외쳤다. 그러자 김 의장은 “날치기의 뜻을 아느냐. 여러분의 행위가 민주주의냐. 여러분 지역구의 초등학생을 방청시켜야겠다. 뭐라고 하겠느냐”며 의원들을 꾸짖었다.

이어 정운찬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석에서 일어나 “예산을 심사해주고 통과시켜준 국회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 총리가 발언하는 사이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들은 모두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김 의장은 예산부수법안 등 나머지 법안을 모두 처리한 뒤 오후 9시 39분 산회를 선포했다.

이날 여야 간에 폭력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들은 의장석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국회 경위들과도 몸싸움을 벌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예산안 통과를 막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예산안을 연내 처리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을 의식해 극단적인 선택을 피한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의원 수가 절대 열세인 데다 새해를 앞두고 물리적 충돌을 연출하면 여론이 등을 돌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대신 민주당은 “이번 예산안 처리는 국회법 절차를 위반했다”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국회법 84조 8항은 ‘위원회는 세목 또는 세율과 관계있는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을 전제로 하여 미리 제출된 세입예산안을 심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세법 개정안보다 예산안을 먼저 처리한 것이 위법이라는 주장이다.

○ 한나라당 예결위 기습 처리


이에 앞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예산안을 예결위에서 기습적으로 단독 처리했다. 안상수 원내대표와 심재철 예결위원장 등은 31일 오전 6시 반에 국회 원내대표실에 모여 대책회의를 연 뒤 단독 처리 방침을 최종 확정했다. 이때까지도 단독 처리 작전은 정몽준 대표, 안 원내대표, 김성조 정책위의장, 심 예결위원장, 김광림 예결위 한나라당 간사 등 5명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새벽에 국회로 나와 예산안 증액에 대한 정부의 서면 동의 절차를 밟았다.

그 사이 여당 의원들은 본청 245호실로 집결했다. 회의 테이블에는 예결위 소속 의원들이, 방청객석에는 다른 의원들이 자리를 채워 예결위 회의 대형을 갖췄다. 민주당 우윤근 수석원내부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찾아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려고 하느냐”고 따졌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총만 한다. 왜 남의 당 회의에 들어오느냐”고 둘러댔다.

한나라당 예결위 간사인 김광림 의원과 차명진 의원은 오전 7시 13분 민주당 의원들이 점거 중인 예결위 회의장을 찾아 “회의장을 비워 달라”고 최후통첩을 한 뒤 반응이 없자 곧바로 회의장 변경을 통보했다. 그 직후 한나라당은 의원들이 모여 있던 245호실에서 비공개로 예결위 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불법으로 날치기 처리했다”며 강력히 성토했다. 이날 오전 8시에는 예결위 회의장 앞에서 규탄대회도 열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예산안을 여당이 단독 처리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며 “절대 묵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예산안 단독 처리 후 본회의장으로 이동하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잠시 엉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동아닷컴 서중석, 박태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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