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치는 약속” 또 제동… 親李 “자존심 싸움 할땐가”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부글부글 끓는 친이
“정부안 나오기도 전에 찬물… 대운하도 공약이지만 접어”

鄭총리 겨냥하는 친박
“고민 끝에 만든 법을 두고, 언제부터 총리였다고…”

靑 몰아붙이는 민주당
“대통령 바뀌면 다 뒤집나… 李정권 비겁하고 치졸”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여권 내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계와 야당이 서로 물고 물리는 삼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의 세종시 원안 수정 움직임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달 31일 “국민에게 한 약속의 엄중함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또다시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9월 16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세종시 문제에 대해 논의했으나 기자들에게 “구체적인 내용은 얘기하지 않겠다”고만 했다. 이 때문에 두 사람 간에 이견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친이계는 “세종시 수정 방침은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면서도 대응책 마련에 고민하고 있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은 ‘세종시 수정 반대’를 앞세워 대정부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 친이계 “정부안 보고 결정하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그동안 세종시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을 피해 왔다. 10·28 재·보궐선거 직전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가 여러 차례 세종시 원안 고수가 당론이라고 강조했을 뿐이다. 조해진 대변인은 1일 기자들과 만나 “정부에서 대안을 내놓으면 내용을 충분히 살펴 어떤 것이 충청지역과 국가 발전에 유리한지 당내 의견을 모아나갈 것”이라며 “세종시 문제는 정부안을 먼저 보자는 것이 대체적인 당내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세종시 원안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왔던 친이계 의원들은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반발하고 있다. 세종시법 개정안을 발의한 임동규 의원은 1일 “세종시법은 2005년 3월 의총에서도 논란이 많았지만 당시 당 지도부가 사학법 등 다른 법안과 엮어서 여당과 합의했던 사안”이라며 “이명박 대통령도 대운하 공약으로 500만 표차로 당선됐지만 그 공약을 지금 추진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박 전 대표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차명진 의원도 “지금은 추상적인 안을 갖고 계파 간에 자존심 싸움을 하듯이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라 정부가 마련한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국민에게 선택을 받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반면 수도권의 한 친이계 초선 의원은 “세종시 문제가 여권에서 조율되지 않고 불거지면 결국 ‘원안이냐, 수정이냐’는 논란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수정론 쪽의 입지가 불리해질 수 있다”며 우려했다.

○ 친박계 “국민과의 약속 지켜야”

세종시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생각을 알고 있는 친박계는 정 총리와 친이계 모두에 불만을 쏟아냈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3월 당내 수도권 의원들의 반대에도 세종시법이 국회를 통과하도록 지원했다. 박 전 대표는 2007년 8월 대선 후보 경선 합동연설회 때는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다는 분이 있었는데 세종시법에 대표직과 정치생명을 걸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 전 대표는 12월 대선 후보 지원 유세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세종시가 제대로 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분이 많은데 이번 대선을 계기로 여러분의 염원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도 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세종시 문제는 수십 개월을 여야 간에 엄청난 고민과 논의 끝에 입법한 일인데 정 총리가 언제부터 총리였나”면서 “총리가 안을 내놓는다고 하는데, 생각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국민과의 약속부터 뒤집겠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친박계인 김선동 의원은 “두 차례 대선 패배 이후 호남과 충청권의 연대 속에서는 한나라당이 재집권하는 것이 어렵다는 절박감에서 세종시법이 처리됐던 것”이라며 “정 총리가 이런 사정은 모르고 세종시 문제를 기능성과 효율성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

세종시에 대한 현실적인 해법 마련 없이 정 총리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컸다. 야당이 똘똘 뭉쳐 있고 50여 명의 당내 친박계 의원이 동의하지 않고 있어 현실적으로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은데도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 총리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박계 의원들은 “세종시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10월 재·보선을 망쳤는데, 또…”라고 지적했다.

○ 야당, 수정 불가로 대여 압박 강화

민주당은 지난주 재·보선 때 충북지역 승리를 계기로 세종시 원안 추진 문제를 본격적으로 쟁점화하고 있다. 선거를 통해 충청권 민심이 세종시 원안 추진으로 드러난 만큼 거침없이 몰아붙이겠다는 전술로 풀이된다.

정세균 대표는 1일 오후 충남 연기군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앞에서 세종시 원안 추진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민주당 공주·연기지역위원장과 부여·청양지역위원장을 찾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은 비겁하고 당당하지 못하다”며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지 총리를 시켜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이 지역을 당황하게 하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모든 것을 뒤집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면서 “앞으로 행복도시를 변질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모든 노력을 동원해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그는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는 “그(충청) 지역 출신 총리를 기용해서 그 사람의 입과 손을 통해 세종시를 백지화하겠다는 것은 비겁하고 치졸하다”며 이 대통령과 정 총리를 싸잡아 비난했다.

자유선진당 세종시 백지화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세종시법안을 발의한 한나라당 의원 10명을 ‘세종 10적’이라고 부르며 대여 투쟁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선진당은 2일부터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집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대대적 여론몰이에 나설 계획이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