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원 전국으로 확대해 가정해체의 아픔 껴안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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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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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4주년을 맞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동아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국민이 법원에 맡긴 사법권을 적절하게 행사해 사법 신뢰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취임 4주년을 맞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동아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국민이 법원에 맡긴 사법권을 적절하게 행사해 사법 신뢰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 취임 4주년 맞은 이용훈 대법원장
인터뷰=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꺼려 왔다. 사법부 수장의 한마디가 혹시라도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런 그를 지난달 30일 동아일보가 처음으로 어렵게 만났다. 이 대법원장은 1962년 제15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법조계에 입문한 뒤 서울민사지법과 서울고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차장을 거쳐 1994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중앙선거관리위원장,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당시 노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2004년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을 거쳐 2005년 9월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 공판중심주의
법정서 이야기 들어주라는 것
판사들 의식 아직 더 바뀌어야
○ 국민참여재판
참여 적극적인 국민에 큰 감동
정착되면 사법신뢰 높아질 것
○ 법원노조 민노총 가입
사법-행정 공무원 구별 없앤격
재판 신뢰 해칠까 우려스러워
○ 사법부 과거사 정리
과거에 재판 잘못한 부분은
적법한 재심통해 시정돼야

“나도 법원 밖에 나가 변호사를 하면서 보니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판사들이 국민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이제 그 장벽을 허물지 못하면 판사와 국민 사이에 영원히 넘지 못할 강이 흐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대법원장은 1시간가량 가진 인터뷰에서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란 말을 자주 쓰면서 법원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 이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스스로 평가를 해주시죠.
“한 일도 없이 4년이 지나갔어요.(웃음) 평가라는 게 국민이 점수를 줘야 하는데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더군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취임할 때 생각만큼 법원이 빨리 변하지도 않았어요. 그동안 말했던 법원의 변화는 대부분 서구에서 실험해서 성공했던 제도인데 2020년, 2030년에도 이런 제도가 타당할지 좀 더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동안 힘써 오신 공판중심주의는 잘 정착되고 있나요.
“어느 정도 정착됐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60년간 선배 판사들에게 배워서 체득한 대로 똑같은 모양의 재판을 해온 판사들이 하루아침에 변한다는 게 어려운 것 같더군요. 공판중심주의는 기록을 읽는 대신 법정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라는 겁니다. 법정에서 이야기를 듣고 재판을 해서 ‘유죄가 틀림없는 것 같다’거나 ‘이 정도면 무죄’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을 바탕으로 재판하라는 거죠. 판사들의 의식 변화가 중요합니다. 판사들이 노력해서 재판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가끔 재판에 직접 가보고 싶기도 해요. 하지만 대법원장이 법정에 나타나면 판사들이 재판하기 어렵지 않겠어요.(웃음)”
―국민참여재판은 어떻습니까.
“국민이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역할을 꺼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너무 적극적이어서 감동했어요. 국민이 사법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고무적입니다. 법조인들도 국민의 참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성공하면 사법 신뢰가 굉장히 높아질 겁니다.”
―불구속재판 원칙을 강조하면서 한때 검찰과 마찰을 빚었는데요.
“검찰은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불만이 있겠지만 구속되는 사람이라고 불만이 없겠어요. 구속은 재판을 하기 위해 도망가거나 증거를 없애지 못하도록 신병을 일시 구금하는 것이고, 최종적인 응징은 재판으로 하는 거죠. 영장은 하나의 절차일 뿐입니다.”
―김준규 검찰총장 취임 이후 검찰도 별건수사, 강압수사를 하지 않겠다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검찰권도 결국 국민이 사회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달라며 위임한 것이라고 보면 어떻게 행사해야 할지 분명하죠. 국민이 맡긴 권한을 어떻게 적정하게 행사할 것이냐는 법원과 검찰이 똑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국회 개헌 논의 과정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을 국회에서 선출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헌법재판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 아닌가 생각해요.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3명씩 추천하도록 한 것은 법을 집행, 제정, 판단하는 3가지 입장에서 위헌 여부를 판단하게 해 국민적 법의식을 도출한다는 점에서 좋은 제도입니다. 전체 국민의 법의식을 형성하는 용광로 역할을 해야 할 헌재가 한 부(府)의 견해만으로 헌법재판을 해서는 안 되죠.”
―법원공무원 노조가 행정부처 공무원노조와 통합해 민노총에 가입했는데….
“행정부 공무원들이 법 집행을 하면 그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사법부 공무원인데 둘이 하나의 노조를 구성하면, 국민들 눈에 법 집행자와 잘못을 가리는 사람이 구별이 안 돼 재판에 대한 신뢰를 해칠까 우려스럽습니다.”
―최근 ‘나영이 사건’으로 성범죄에 대한 처벌 논란이 뜨거운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형량이 확정된 사건의 양형을 논하는 것은 온당치 않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국민의 법 감정과 법원의 양형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양형기준을 수정 보완하는 과정에도 세심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시적 여론으로 형량이 오락가락하면 사법 신뢰가 떨어질 수 있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활동은 어떻게 보십니까.
“제 생각에도 그렇고 국민이 생각해도 그동안 법원의 양형이 너무 온정적이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양형위가 출범하면서 그런 문제가 잘 해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형기준이 없어 판사마다 양형에 차이가 크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양형조사관 문제로 검찰과 갈등을 빚는 데 대한 견해는….
“검찰의 양형은 수사를 통해 나온 사실을 근거로 어느 수준으로 처벌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고, 법원의 양형조사는 법관이 당사자 견해를 듣고 증거를 조사해 선고형량을 정하기 위한 것이어서 근본적으로 달라요. 판사가 양형조사관의 도움이 필요하면 절차만 제대로 지켜 하면 되는 것이고 검찰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죠.”
―민일영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 청와대와의 갈등설이 있었던대요.
“제청하는 사람(대법원장)과 임명하는 사람(대통령)의 생각이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갈등이라고 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최근 과거 시국사건에 대한 재심 결정이 많은데 사법부의 과거사 정리 문제는 어떻게 봅니까.
“최근 보니까 상당히 많은 재판이 재심을 통해 시정되더군요. 곧 마무리될 겁니다. 정리가 돼야 해요. 사법부가 과거에 재판을 잘못한 부분은 인간의 한계도 있고 그럴 수 있어요. 재심 인정은 그런 것을 시정하기 위한 겁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시정하는 것은 과거사뿐 아니라 어떤 재판에서도 시정돼야 해요.”
―가정법원이 다문화 시대 등 사회 변화에 많은 준비를 하고 있던데요.
“사법정책 자문위원회에서 논의 중이에요. 가정이 파괴되는 일이 늘어나면 후견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 가정법원이에요. 전국적으로 가정법원을 만들어 국민의 아픔을 함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취임 때부터 생각했는데 아직 실천을 못했어요. 임기 안에 해보려고 합니다.”
―사법부의 친(親)서민 서비스 계획은 없나요.
“(웃으면서) 우린 벌써 하고 있어요. 내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법원 민원실을 크게 개선한 것입니다. 국민이 법원에 도움을 요청하면, 법원 직원이 모든 절차를 처리해서 결과를 내줘야 한다고 보고 모든 법원에 종합민원실을 만들었죠. 또 서민이 소송을 할 때 도움을 주는 소송구조 제도도 활성화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남은 임기 2년 동안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싶은 일은….
“법원도 종이문서로 재판하는 시대는 마감해야죠. 전자소송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법원의 모든 문서를 전자 파일로 대체하려 합니다. 형사사건은 법정에서 심리를 통해 증거를 채택해야 하기 때문에 전자문서만 갖고 하기는 어렵지만 민사나 행정사건은 변호사나 당사자가 전자문서로 법원에 소송서류를 내고 법원이 그걸 추적해서 기록을 만드는 제도를 만들면 돼요. 한 발 더 나아가 멀리 있는 사람을 굳이 재판에 나오지 않게 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대법원장은 인터뷰를 끝내면서 “언론이 법원의 부정적 면만 너무 보도하면 국민은 법원이 매일 잘못을 저지른다고 생각한다”며 “긍정적 보도도 많이 해야 사법부 신뢰가 높아지고 법치주의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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